'치악산'-원주시 갈등 '윈윈' 해법 쥘까…'곡성' 역발상 돌아보기

영화 '치악산', 제목 두고 원주시와 갈등 점입가경
'치악산' 측 포스터 잔혹성 등 논란 자초한 측면도
법적 공방 예고…서로에 이득될 합의점 찾기 과제

강원 원주시에 있는 치악산을 제목으로 쓴 공포영화를 두고 해당 지역 사회가 들끓고 있다. 원주시는 당초 치악산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제목 수정 등을 요구했는데, 영화 제작사가 이를 거부하자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지역 사회에서는 '영화 개봉 반대' 목소리가 번지고 있다.

이번 논란은 선을 넘은 해당 영화 관련 포스터의 잔혹성 탓에 촉발된 것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근 들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치악산' 제목을 단 포스터 하나가 확산됐다. 문제는 이 포스터가 토막 난 시신 형상을 여과 없이 담아 누리꾼들을 경악시켰다는 데 있다.

논란이 커지자 '치악산'을 연출한 김선웅 감독은 지난 21일 "'치악산' 공식 포스터가 아닌 해외 슬래셔·공포 장르 영화제를 겨냥해 개인적으로 제작한 시안이었다. 이를 개인 SNS에 공식 포스터가 아님을 공지해 게시하였으나, 몇몇 커뮤니티에 해당 게시물이 공유되며 온라인상에 확산, 공식 포스터로 인식됐다"고 해명했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이 포스터 논란으로 인해 '치악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커졌다. 40년 전 치악산에서 발견된 의문의 토막 시신에 얽힌 기이한 이야기를 다룬 공포영화라는 사실도 널리 퍼져 나갔다.

영화 '치악산'을 향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이 산을 품은 지자체·지역민들 우려도 커졌을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원주시는 지난 23, 24일 이틀에 걸쳐 제작사 도호엔터테인먼트와 관련 협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원주시는 '사실이 아닌 괴담 수준의 내용으로 인해 대표적 관광자원인 국립공원 치악산과 지역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울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그러면서 △실제 지명인 '치악산'이 그대로 사용된 제목 변경 △영화 속 '치악산'이라는 대사가 등장하는 부분을 삭제 또는 묵음 처리 △영화 본편 내에 실제 지역과 사건이 무관하며 허구의 내용을 가공하였음을 고지 △온라인상에 확산된 감독 개인 용도의 비공식 포스터 삭제 등을 요구했다.


깊어지는 갈등의 골…"상영 금지" 목소리로 번져


원주시농업인단체연합회가 지난 29일 원주시청 브리핑룸에서 영화 '치악산' 개봉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원주시 제공
제작사 도호엔터테인먼트 측은 원주시의 영화 제목 변경과 본편 내 '치악산' 언급 부분 삭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호엔터테인먼트 박도영 대표는 25일 "'토막 난 시신'이 포스터에 등장할 정도로 치악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잔혹하고 폭력적일 거라는 오해를 하고 계셨기에, 해당 부분에 대해 심의 과정에서 '15세 이상 관람가' 평가를 받은 점을 설명 드리고 원주시 관계자분들과 지역 주민분들을 위한 단체 시사회를 진행해 오해를 해소하고자 제안 드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주시는 27일 영화 '치악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영화 상영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유·무형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원강수 원주시장은 "전국 최고의 안전 도시이자 건강 도시인 원주의 이미지가 괴담으로 훼손이 우려된다"며 "영화 개봉으로 인해 36만 시민 그 누구도 피해를 보지 않도록 시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급기야 해당 지역 농업·종교 단체들은 '치악산' 상영 반대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반대 활동에는 지역 경제·관광 업계도 동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치악산 구룡사 신도들은 28일 "서기 668년 창건한 치악산 구룡사는 매년 20만명 관광객과 신도 1만여명이 마음 수양을 위해 방문하고 있다"며 "치악산에서 발생하지도 않은 토막살인 괴담을 배경으로 한 영화 상영과 홍보는 원주시와 치악산 구룡사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키고 위협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원주시농업인단체연협회도 29일 "원주시와 치악산 국립공원의 청정한 이미지와 수천년간 이 땅을 지켜온 치악산 농특산물 브랜드를 심각하게 훼손할 영화 '치악산' 개봉 중단을 촉구한다"며 "벌써 포털사이트에 치악산을 검색하면 괴담, 사건, 토막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치악산이라는 지명 제지가 창작가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면, 원주농민들이 일궈 놓은 농산물 브랜드가 묵살되는 건 왜 당연한 일로 치부해야 되는지 답을 듣고 싶다"고 지적했다.


"역발상 통해 남는 장사를"…'곡성' 선례서 '윈윈' 해법 찾기


실제 지명을 소재로 빌려온 영화는 과거에도 비슷한 논란을 불러왔다. 이번 '치악산' 논란으로 인해 과거 '곡성' '곤지암' 사례가 회자되는 이유다.

지난 2018년 당시 역대 공포영화 사상 일일 최고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우는 등 흥행세를 앞세워 267만여 관객을 모은 '곤지암' 역시 비슷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곤지암'은 영화 시작과 끝에 허구를 알리는 문구를 두 차례 넣은 뒤 개봉했다.

이 영화는 폐업한 곤지암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했는데, 당시 경기 광주시는 "곤지암 일대에 막연한 심리적 불안감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며 제목 변경을 요청했다. 이 병원 실제 소유주는 건물 매각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상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이를 기각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2016년 개봉해 7백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모은 나홍진 감독 작품 '곡성'은 좋은 선례로 남아 있다.

이 영화 역시 개봉을 앞두고 전남 곡성 지역 사회 항의로 인해 '곡성 지역과 관련 없는 허구의 내용'이라는 문구를 넣는 등 의견을 조율한 끝에 상영됐다. 이후 곡성 지역은 해당 영화 흥행에 힘입어 관광지로 각광을 받기에 이른다.

당시 유근기 곡성군수는 "영화와 우리 지역이 무관하다고 아무리 주장한들 사람들 머릿속 연상마저 막을 길은 없다. 우리의 낙천성을 믿고 역발상을 통해 우리 군의 대외적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우리 군으로서는 남는 장사"라며 "행여 영화 '곡성(哭聲)'을 보고 공포가 주는 즐거움을 느낀 분이라면 꼭 우리 '곡성(谷城)'에 오셔서 따뜻함이 주는 즐거움 한자락이라도 담아갔으면 좋겠다"는 글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영화 '치악산' 측과 원주 지역 사회가 갈등의 골을 채우고, 서로에게 득이 될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을지에 대중의 관심이 모아지는 까닭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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