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모두의 바다는 사라졌다" 제주 가파도 해녀의 분노

[인터뷰]유용예 가파도 어촌계장
'섬 속의 섬' 가파도 해녀, 오염수 방류 이후 달라진 삶
기후위기에 이어 원전 오염수 문제로 해녀들 생계 위협
"해녀의 존재 이유는 바다…염려하며 '테왁' 들 수밖에"
"바다가 이렇게 됐는데…해녀문화 보전? 아이러니하다"
"하나로 연결된 바다…과학적 안전성 맹신할 수 없어"
"우리는 이 바다에 살고 싶다…지금이라도 방류 중단"

제주 가파도 해녀. 유용예 어촌계장 제공

"'8월 24일' 이후로 모두의 바다는 다르게 기록될 겁니다."
 
지난 27일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도에서 만난 유용예(44) 어촌계장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자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이같이 말했다. 해녀를 기록하는 사진작가이자 '젊은' 해녀인 그에게 오염수 방류는 생계 위협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환경 파괴를 의미한다.

 

'물벗'과 함께 숨 나누던 삶의 공간, 바다


서울의 한 IT 회사에 다니던 유 계장은 2010년 여행 차 제주도 본섬과 최남단 마라도 사이의 작고 낮은 섬 청정 가파도를 찾았다. 여기서 만난 한 해녀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 해녀에 관심을 가졌다. 바다를 풍경의 대상이 아닌 '삶'이라 말하는 검푸른 바다를 닮은 할머니의 눈에 매료됐다.
 
"그 해녀 할머니께서 바다 가서 자식들을 다 키워냈다고 해요. 혹독한 시간을 견뎌낸 중심에는 바다가 있더라고요. '살암시믄 살아진다(살다보면 살게된다)'는 할머니 말에 해녀의 고된 삶이 함축돼 있었어요."
 
2014년부터 가파도에 정착해 해녀 할머니를 따라 물속에 들어가며 그들의 삶을 기록했던 유 계장은 2018년 본격적으로 해녀 일을 시작했다. 물때가 맞는 한 달 중 보름여 간 매일 새벽 가파도 해녀 40여 명과 함께 테왁(몸이 뜨게 하는 공 모양의 기구)을 들고 먼 바다로 향했다.
 
제주 가파도 해녀들. 유용예 어촌계장 제공

"가파도 해녀들은 혼자서 물질 안 해요. 같이 들어간 동료를 '물벗'이라고 하는데, 서로 경쟁하면서도 함께 숨을 나눠요. 절대적으로 서로 의지하는 사이에요. 바다 나갈 때도 웃으면서 나가고 동료들 챙기고. 아무리 싸우더라도 서로의 고무 옷을 올려줍니다. 바다 안에 배려의 문화가 있어요."
 

기후위기에 이어 오염수…"염려하며 바다로"


해녀들의 삶의 공간인 가파도 바다는 최근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다. '기후 위기'로 인해 바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가파도 해녀의 주 수입원이었던 미역과 모자반, 톳이 사라진 것이다.
 
"처음 바다에 들어갔을 때는 아름다운 바다였어요. 지금은 이전의 바다와 정말 다릅니다. 최근 5년 사이에 그 많았던 미역과 모자반, 톳이 사라졌어요. 14살에 물질을 시작해서 80살이 된 해녀 할머니는 한 번도 겪지 못한 경험을 하고 계신 겁니다. 이분들의 당혹감은 상상할 수 없는 거죠."
 
가파도에 내걸린 원전 오염수 방류 반대 현수막. 고상현 기자

한평생 바다와 함께 살아온 가파도 해녀에게 또 한 번의 큰 변화가 찾아왔다. 바로 지난 24일부터 시작된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다. 기후위기에 이어 인류의 "잘못된" 행동이 가져온 변화다.
 
"소비자들이나 레저 활동하시는 분들은 선택할 수 있지만, 저희 해녀들은 생계가 달려 있잖아요. 바다에 들어가야 돼요. 바다를 떠나서 해녀는 존재할 수 없어요. 맨몸으로 들어가서 6시간 이상 조업하는데 물을 얼마나 마시겠어요. 안전 문제로 염려하면서 바다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한평생 물질을 했는데, 바다를 떠나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농부가 돼야 하는 건지, 선택을 못해요. 제일 잘하는 바다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가뜩이나 기후위기로 해녀들의 주 수입원인 미역과 톳, 모자반이 사라져서 경제적인 타격을 입었는데, 또 한 번 큰 위기를 맞게 된 겁니다."

 

"바다가 이렇게 됐는데…해녀 보전? 아이러니"


유용예 가파도 어촌계장. 고상현 기자

오염수 방류로 생계 위협에 이어 해녀 공동체 파괴 위기에 놓였지만, 인류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해녀 문화를 전승하고 보전하려는 현 상황이 "아이러니하다"고 유 계장은 얘기하기도 했다.
 
"제주 해녀가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됐잖아요. '해녀를 양성해서 해녀 명맥을 유지하자. 해녀 문화를 전승하고 보전하자'고 하는데 오염수 방류로 아이러니하게도 바다가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정말 이를 악물게 되는 그런 상황이 됐습니다."
 
정부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하지만, 바다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일본 정부가 수십 년간 오염수를 방류하는 만큼 바다와 인류에 끼칠 영향을 쉽사리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위기는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범위에 있어요. 오염수 방류량이 어마어마하잖아요. 바다와 생태계는 하나로 연결돼 있는데, 이게 조류를 따라서 우리에게 언제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현재 아무런 문제가 없다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어요."
 
"물질을 안 할 수도 없고 이미 이렇게 된 상황이라면 정부에서 좀 더 촘촘하게 오염수 상황을 관측해줬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바다 보면 파고와 풍향을 기록하는 부표가 떠있는데, 이것보다 더 촘촘하게 오염수 상황을 실시간으로 조사해서 알려줬으면 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일이잖아요."
 

"거대한 바다가 죽는다면서요?" 어린이의 외침


제주 가파도 해녀들. 유용예 어촌계장 제공

그는 일본 정부의 원전 오염수 방류 발표 이후 최근까지 동료 어민과 함께 도내 각지에서 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을 알리는 집회를 열고 있다. 이때 만난 한 어린이의 얘기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지난주 제주시 협재해수욕장에서 게릴라 집회를 열었어요. '제주 바다를 지켜주세요'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있는데, 한 어린이가 뛰어와서 '저도 원전 오염수 이야기를 알아요. 거대한 바다가 죽는다면서요?'라고 하는 거예요. 어린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게 얼마나 슬픈 이야기인가요."
 
"제발 지금이라도 일본 정부가 오염수 방류를 멈췄으면 해요. 우리는 이 바다에 살고 싶고 앞으로도 살고 싶어요. 우리가 봤던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과 생물과의 교감, 바다에 들어가서 느꼈던 행복감 이 모든 것을 미래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일본 정부는 인류에 못 할 짓을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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