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사물의 정도나 성격 따위를 알기 위한 근거나 기준'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표준이라는 용어는 양면성을 제공합니다.
한편의 사람들에게는 편안함을 제공합니다. 우리가 물건을 구입할 때도 표준이라는 제도 때문에 안심하고 구입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제공합니다. 표준은 자율성을 훼방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표준에서 벗어나는 것들에 대해서 표준은 그 존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표준은 일종의 변증법적 작용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요즘 한국 교회를 보면서 표준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마음에 담깁니다. 한국 교회는 표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형편없는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다른 것 같고 공유 지점을 찾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혼란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는 교단 간의 차이에다가 교회마다 차이도 뚜렷한 편입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교단은 다른데 교회는 오히려 비슷한 경우도 존재합니다.
이렇듯 한국교회는 개별성이 아주 중요한 특징으로 나타나는 교회입니다. 신학적 차이, 교회 정치적 차이, 교회 문화적 차이 등 수많은 차이들이 별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드러나는 셈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차이들이 각 교회의 독립성이나 특성이라는 긍정적인 부분보다는 혼란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하나는 교단과 교회들 간의 갈등과 불화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이단처럼 생각하거나 혐오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교회 바깥과 파트너십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교회 밖에서 볼 때 교회에 대한 그 정체성을 그리는데 쉽지 않습니다. 누구와 대화해야 할지 모르는 대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범교단적인 노력과 함께 개교회의 인식 전환도 필요합니다. 지나친 개인적인 신학적 관점이나 신앙의 특성을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언어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공공성을 갖습니다. 공공성을 개인 영역화해서는 안 됩니다.
나아가 우선적으로 개신교 내부의 스펙트럼이 어느 정도 되는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맞추어 보자는 생각보다는 다름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한 노력부터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로부터 아주 기본적인 틀거리부터 만들어내야 할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할 때입니다.
CBS논평이었습니다.
[조주희 목사 / 성암교회, 기윤실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