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달간 연쇄적으로 발생한 '묻지마 강력범죄' 사건들과 함께 살인‧흉기난동 등을 예고하는 게시물들이 온라인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간접 트라우마' 발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림역 칼부림 사건 발생 후 한 달이 지난 21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살인예고' 게시물 431건을 적발해 192명을 검거하고, 이 중 20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주로 강남역이나 잠실역 등 사람이 많은 밀집 지역이 범행 예고 지역으로 거론된 가운데, 같은 날 30대 회사원 A씨가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현직 경찰로 위장 후 살인예고글을 올렸다가 하루 만인 22일 붙잡히기도 했다.
이 같은 살인예고글 게시가 실제 범행으로까지 이어진 사례는 아직 없다. 그러나 지난달 21일 신림역 칼부림 사건 이후, 3일 분당 서현역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17일 신림동 관악산 등산로 성폭행 살인사건, 19일 합정역 흉기난동 사건이 벌어지는 등 묻지마 강력범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문가들은 이어진 묻지마 강력범죄 사건과 살인‧흉기 난동 예고 게시물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간접 트라우마(심리적 외상)'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통상 트라우마는 본인이 현장에서 사고를 직접 당하고 목격하거나 사고로 가족,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을 때 주로 발생한다. 목격한 장면이 반복적으로 떠올라 괴롭거나 신체적 반응으로 두근거림, 숨 가쁨, 목이나 가슴이 조이는 느낌, 소화불량 및 메스꺼움 등이 나타날 수 있고, 불면, 과다각성, 우울, 멍함, 비현실감 등도 나타날 수 있다.
반면 간접 트라우마는 실제로 직접 사건‧사고를 당하거나, 범죄 현장에서 사건을 목격하지 않아도 겪을 수 있다.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오상훈 교수는 "최근에는 SNS 등을 통해 끔찍한 사건 장면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종우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회장 역시 "최근 강력범죄들로 인한 간접 트라우마를 환자들을 실제 진료실에서 만나고 있는 실정"이라며 "미디어와 SNS의 발달로 간접 트라우마가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 회장은 "자신의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을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사회 안전에 대한 불안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자신의 의지가 아닌 우연히 사건 당시 영상을 접한 후 괴로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최근에는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 회장은 간접 트라우마의 경우 초반에 잘 대처하면 만성화 또는 악화되지 않고 극복할 수 있는 확률이 직접적인 트라우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고 밝혔다. 다만 이미 유사한 트라우마나 기저 정신 질환이 있는 경우 간접 트라우마가 단기간에 그치지 않고 상당한 고통을 줄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오 교수 역시 간접 트라우마 증상은 사건‧사고를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하며 발생하는 트라우마와 비교해 약하지만 "과거 유사한 트라우마를 경험했거나 평소 불안도가 높은 사람들에게는 전통적인 트라우마 증상 못지않게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규칙적인 생활과 적절한 휴식, 운동, 균형잡힌 식사를 유지하는 것이 간접 트라우마 회복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간접 트라우마가 사건 현장을 담은 자극적인 영상물들에 대한 노출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SNS나 미디어 노출을 줄일 것을 권하기도 했다.
백 회장은 "가정이나 직장 내에서도 트라우마 증세를 호소하는 이들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대부분의 경우 시간이 경과할수록 안정을 찾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옆에서 함께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트라우마 증세가 3일 이상 지속될 경우 보건복지부 정신건강 상담전화(1577-0199)로 전화해 지역 내 정신건강복지센터와 무료 상담을 진행해볼 것을 권고했다.
한편 백 회장은 "한 번만 일어나도 괴로운 일들을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악순환을 차단할 수 있는 사회적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오 교수도 국가적 차원에서 "모자이크 처리가 되지 않은 사건 당시의 CCTV 영상물 등 자극적인 SNS 게시물이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것을 막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