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외압'을 주장하는 담당 수사단장의 항명 논란까지 낳았던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건 수사에 대한 국방부의 재검토가 마무리됐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해병대 수사단의 당초 수사결과와 달리, 임성근 1사단장과 박상현 7여단장에 대해서 혐의를 적지 않고 사실관계만 적시해서 경찰에 이첩하기로 했다.
그러나 '윗선'인 사단장과 여단장에 대해 직접적인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하지 않고 이첩하기로 하면서 '축소' 논란이 여전히 제기될 전망이다.
또한 당초 수사 결과대로 이첩 서류에 혐의를 적시하는 것이 민간 경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줄 수 있다면서 보류를 지시했다는 것이 국방부의 논리였는데, 정작 이번 '재검토'를 통해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비판에도 직면하게 됐다.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들은 21일 기자들과 만나 수사기록 재검토 결과를 발표하며 "수색활동과 관련된 지휘계선에 있거나 현장통제관으로 임무를 부여받은 4명은 문제가 식별됐지만, 현재의 기록만으로는 범죄혐의를 특정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해병대 수사단은 당초 8명으로 혐의자를 적시해서 경찰에 이첩했었다. 그러나 이를 재검토한 조사본부는 장병들에게 허리 깊이까지 들어가 수색하라고 직접적으로 지시한 7포병대대장과 11포병대대장에 대해서만 범죄혐의를 적시해 인지통보서를 작성, 직접적인 혐의자는 2명으로 줄어들게 됐다.
문제의 '4명'은 임 사단장과 박 여단장 그리고 중대장, 사고 당시 채 상병과 같은 조로 편성돼 있었던 중사를 뜻한다. 이 4명에 대해서 조사본부는 "식별된 문제점들이 범죄의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보지만 현재의 수사 기록만으로는 범죄혐의를 특정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아예 제외된 2명은 당시 현장에 있던 중위와 상사로, 조사본부는 이들이 채 상병과 같은 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의로 수색조에 합류했기 때문에 현장통제관의 업무상 지위와 그에 따른 주의 의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포병대대장 2명은 당시 여단장이 장화 높이까지만 입수가 가능하다는 지침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허리까지 들어가라고 직접적으로 지시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를 받고 있다.
정리하면 이첩 당시 적시돼 있었던 혐의자 8명 가운데 2명(7포병대대장, 11포병대대장)은 채 상병의 죽음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판단하에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됐고, 4명(사단장, 여단장, 중대장, 중사)은 현재의 수사기록만으로 직접적 인과관계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사실관계를 적시해 이첩, 2명(중위, 상사)은 혐의자에서 제외된 셈이다.
조사본부 관계자는 "사건기록에 반영돼 있지 않은 내용을 판단하거나 재조사,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며 "명확하게 사건기록에만 있는 내용만 검토했고, 차후에 경찰에서 (4명에 대해) 어떠한 소홀함이 있었고 과실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보강조사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수사기록을 토대로 경찰이 최종적인 수사를 맡는다고 하더라도, 이같은 국방부의 '자체 조사' 결과는 임성근 사단장 등 '윗선'이 빠졌고 혐의자도 2명으로 대폭 줄어들어서 축소 논란 등이 예상된다.
대표적인 예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당초 임 사단장에게 지난달 15-16일 수색작전을 하면서 이에 대한 사전공지나 전파를 하지 않고, 17일 오전에야 수색작전을 한다는 사실을 전파해 부대원들이 구명조끼 등 안전장구를 챙길 수 없게 한 혐의를 적용한 것을 들 수 있다.
조사본부 관계자는 "수사기록을 재검토하면서 사망의 직접적 인과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부분들을 검토했다"며 "범죄혐의라 함은 결국 사망과 직접적 인과관계가 있는,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로 인과관계가 매칭돼야 하는데 특정한 2명(7포병대대장, 11포병대대장)은 그렇게 판단했다. 나머지는 문제는 있지만 그런 인과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지는 확인이 제한된다"고 설명하긴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방부는 범죄혐의를 적시해서 이첩하는 일이 차후 민간 경찰의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이첩을 보류했던 바 있는데, 정작 '재검토 결과'에서는 수사기록에 기초한 일종의 '결론'을 만들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21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해병대 수사단이 모두 8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를 적용한 것은 과도한 것으로 판단됐다"며 "잘못을 엄중히 처벌해야 하지만 죄 없는 사람을 범죄인으로 만들어서도 안 되는 것이 장관의 책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정 군사법원법에 의해 이른바 '3대 이관 범죄(성범죄,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 입대 전 범죄)'의 경우 군은 수사권은 물론 누가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 자체를 판단할 법적 근거가 없다. 국방부도 인정하듯 판단은 결국 민간 경찰이 해야 하는데, 넘길 서류에는 '군 나름의 결론'을 만들어서 이첩한 셈이다.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당초 국방부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혐의와 혐의자를 빼고 기록을 이첩하라고 말한 근거로 사건에 대한 법적 판단을 예단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꼽았는데, 오늘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국방부는 사단장 등의 '범죄 혐의를 특정하기 제한'된다던가,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된다는 등 명확한 법적 판단을 담아 이첩했다"며 "사단장을 혐의자에 포함할 때는 예단을 하면 안되고, 삭제할 때는 예단을 해도 된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센터는 "대놓고 막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마치 일선 부대 대대장에게 모든 책임이 있고, 임 사단장과 여단장 등은 정당한 지시를 했으며 주의 의무도 다한 것처럼 수사 결과를 마음대로 짜깁기한 데 대해 국방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뿐 아니라 과실치사 혐의가 적시된 당사자인 7포병대대장 이모 중령도 변호인을 통해 "사실 오인이 심각하다"며, 임성근 사단장이 물에 들어가 수색하라는 지시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책임을 자신에게 모두 지운 일이 부당하다는 논리로 반발하고 나섰다.
결국 국방부의 '재검토'가 핵심적인 의혹은 거의 풀어주지 못한 가운데 공은 민간 경찰로 넘어갔고, 조사본부가 언급했듯 '추가 조사'를 통해 이를 풀 수 있을지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채 상병의 유족은 이날 해병대 공보정훈실을 통해 "향후 경찰에서 신속하고 현명한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 규명이 되고,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 대책이 세워지는 것도 고대하고 지켜보겠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