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동해항 통해 103년 만에 귀국

AI로 복원한 최재형 선생과 최 엘레나 여사의 모습. 연합뉴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이 부인 최 엘레나 여사와의 현충원 합장을 위해 103년 만에 강원 동해항을 통해 귀국한다.

9일 동해시 등에 따르면 국가보훈부는 지난 1일 최재형 선생의 순국 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흙과 70여 년간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부인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를 모셔와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합장하겠다고 밝혔다.

최재형 선생은 지난 1920년 4월 연해주 우스리스크를 급습한 일본군에 의해 즉결 처형됨에 따라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970년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 조성된 최 선생의 가묘 또한 가짜후손 소동으로 현재 멸실된 상태다.
 
이에 유골 및 시신을 안장하도록 한 '국립묘지법' 규정에 따라 최 선생의 묘는 복원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에서 유골 및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와 배우자 유골을 합장할 수 있도록 하는 관련법 개정을 추진해 지난 달 18일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그 첫 사례로 최 선생 부부의 묘를 조성하게 됐다.  
 
이에 따라 최 선생 부부의 현충원 합장식은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오는 14일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7일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온 최 여사의 유해에 이어 최 선생이 순국한 장소의 흙은 오는 11일 이스턴드림호를 통해 들어온다. 
 
이스턴드림호. 동해시 제공

최 선생은 지난 1860년 함경도의 가난한 소작농의 차남으로 태어나 9세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로 이주했다. 생전에 사업가로 자수성가해 축적한 막대한 부를 조국 독립과 수십만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썼다.

최 선생은 러일전쟁 후 '동의회'를 조직해 항일 의병투쟁을 펼쳤고,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 참여한 독립군들에게 무기를 제공한 것도 최 선생이다.
 
최 선생은 블라디보스토크의 동포신문 '대동공보'가 재정난으로 폐간하자 이를 인수, 재창간해 애국심을 고취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무총장으로도 활동하는 등 '시베리아 동포의 대은인'으로 추앙받았다.
 
부인 최 여사는 최 선생과 결혼한 이후 8명의 자녀를 두고 최 선생의 독립운동을 내조했다. 안 의사 순국 뒤엔 그의 남은 가족들을 보살핀 것으로도 알려졌다. 최 여사는 최 선생 순국 뒤엔 자녀들과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다 1952년 숨을 거뒀다.
 
(재)북방물류산업진흥원 최호영 원장은 "이번에 들어오는 것은 최 선생이 순국한 장소의 단순한 흙이 아니라 최 선생의 피와 땀이 배어있는 최 선생의 영혼 그 자체"라며, "운송비를 전액 지원한 두원상선 뿐만 아니라 동해시민 전체가 최 선생의 귀국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선생 부부의 영면을 소망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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