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순살 아파트' 사태의 심각성이 부각되면서 정부가 같은 구조로 지어진 민간 아파트에 대해서도 전수조사에 나서기로 한 가운데, 이번 사태가 빡빡한 공사기간과 만연화된 하청 관리 부실 등으로 인한 인재라는 지적이 거듭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3일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민간 아파트 293개 단지에 대한 전수조사를 내주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전수조사 결과와 함께 무량판 구조 안전대책도 함께 마련해 오는 10월 중 발표할 계획이다.
불안감 확산에 무량판 구조에 대한 점검도 함께 하겠다는 것이지만 정부는 물론 전문가들도 무량판 구조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변수들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더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 중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넉넉하지 못한 공사기간이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아파트의 공기는 대개 3년 정도인데 발주사들은 물론이고 공공 분양·임대를 책임지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여유 시간을 넉넉하게 부여하지 않는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LH는 발주한 공사의 공기를 '빡빡해서 죽지는 않을 정도'로 주고, 민간기업의 경우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경우 그 시기까지 맞춰서 오픈을 하자며 굉장히 타이트하게 일정을 주기도 한다"며 "순리대로만 가면 공기를 맞출 수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면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골조공사 시기가 겨울철과 맞물리거나, 경기침체 등으로 협력업체가 부도가 나거나, 이상기후가 발생하거나 하는 등으로 작업이 지체될 경우에는 공기 단축을 위해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 전직 LH 직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기둥을 줄이거나 철근을 덜 사용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는 원인으로 "아무래도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서라고 생각이 된다"고 말했다.
LH 발주 아파트의 경우 선분양제이기 때문에 입주일이 정해져 있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책임이 있는 기관이 배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발주사와 시공사 등 모두가 공기에 대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외부 변수에 대한 대응 방안을 발주처와 협의하려고 해도 비용 부담 등의 우려 때문에 공기 연장을 언급하기가 어렵다.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건축은 말 그대로 시간이 돈"이라며 "이윤을 내야 하는 사업이니 어떻게든 공기를 맞춰야 하지 않겠느냐"고 토로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이날 서울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용 절감을 위해 공기 산정 의무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하는 건설사와 이를 감시하지 않는 LH, 국토부에 부실공사의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일정한 공사 품질을 담보하기 어려운 하청업체 변수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단지 아파트 건설 공사가 특정 시기에 몰릴 경우 시공업체들이 필요로 하는 협력업체 수 또한 증가하기 때문에 특정 공종 능력이 우수한 하청업체 품귀현상이 빚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해당 공종 능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시공업체와 관계가 나쁘지 않은 업체나, 무자격 업체를 하청 또는 재하청해서 활용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특히 감리단이나 사업단을 별도로 구성하는 LH 사업과 달리 민간사업의 경우 시공을 평가해야 하는 감리도 용역을 하청 받아서 하는 경우가 많아 시공·시행사의 눈치로부터 자유롭기가 어렵다.
대한민국 산업현장교수단 최명기 교수는 "민간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시공사하고 시행사 이렇게 구성이 된다. 물론 감리가 있겠지만 감리는 역할을 할 수 없는 이런 환경들이 되게 많이 놓인다"며 "하도급 부분에 대한 문제도 있고, 감리 역시 공정 내에 프로젝트를 완수를 시켜야 할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다단계 하도급 등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기 어려운 점을 개선하기 위해 발주자의 감리 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안이 2020년 9월 발의됐지만, 3년 째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