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에서 촉발된 철근 누락 사태에 부산에서도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지자체는 부랴부랴 사태 파악과 점검에 나섰다.
수년 전 부산 북구의 한 LH 아파트에 입주한 직장인 김모(30대·남)씨는 연일 터져 나오는 이른바 '순살 아파트' 관련 뉴스를 보며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현재 거주하는 집이 2017년 이후 준공한 데다 LH 아파트여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지만, 의문을 해소할 뾰족한 방법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김씨는 "무량판 구조로 지어진 주차장에서 철근을 빼먹으면 특히 더 위험하다고 하는데, 매번 주차장을 이용해도 이게 무량판인지 철근이 제대로 들어가 있는지 일반인은 도저히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LH가 공기업이라서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믿었는데 땅 투기 사태에 이번 일까지 겪으면서 신뢰가 완전히 다 무너졌다. 정부에서 조사한다는 데 이미 지어진 아파트를 어떻게 조사한다는 건지도 모르겠다"며 "주민들도 다들 불안하지만 집값 문제 때문에 대놓고 불안하다고 말도 못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순살 아파트' 논란은 지난 4월 인천 검단신도시 LH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지하주차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시작됐다.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지하주차장을 무량판 구조로 지으면서 철근을 누락한 게 붕괴 원인으로 드러났다.
2017년부터 지하주차장에 사용되기 시작한 무량판 구조는 상부 무게를 지탱하는 보가 없어 기둥 주변에 철근(전단보강근)을 여러 겹 감아 보강해야 하는데, 설계와 시공과정에서 필요한 것보다 훨씬 적은 양의 철근이 쓰인 것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31일 전국에서 LH가 발주한 아파트 가운데 지하주차장이 무량판 구조로 지어진 91개 단지를 전수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모두 15곳이 지하주차장 기둥 주변 보강 철근을 누락하거나 설계도면대로 시공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 중에는 부산과 가까운 양산 사송지구 아파트도 포함됐다.
부산에서도 순살 아파트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자 부산시와 각 기초단체는 현황 파악에 나섰다.
기초단체들은 부산시 요청에 따라 각 지역에 공사 중인 무량판 구조 공동주택과 2017년 이후 준공한 무량판 구조 적용 공동주택 현황 등을 조사하고 있다.
부산 남구 관계자는 "부산시에서 요청한 무량판 구조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구청에도 '우리 집 지하주차장이 무량판 구조인지 알고 싶다'는 주민 문의가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부산시는 이달 7일부터 30일까지 부산지역 무량판 구조 건축물 48곳에 대한 특별점검에 나선다.
점검 대상은 2017년 이후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아파트 등 공동주택 39곳과 일반건축물 9곳이다. 공동주택 가운데 20곳은 이미 준공한 곳이고, 나머지 19곳과 일반건축물 9곳은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점검은 크게 설계·시공, 건설안전, 품질관리, 감리 등 분야에 걸쳐 진행된다. 특히 검단 LH 아파트에서 문제가 된 전단보강근은 철근 탐지기를 통해 살펴보고, 콘크리트 강도는 '슈미트 해머'로 확인할 계획이다.
한편 민주노총 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지역본부는 3일 오전 부산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는 불법 도급과 무리한 속도전이 구조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전국 착공 면적이 급감하는 사이 건설사 수는 오히려 늘어나 줄어든 파이에서 이윤을 더 남겨야 하는 건설사들은 결국 불법 도급과 무리한 속도전을 선택했다"며 "법에 따라 적정 공사 기간을 의무적으로 산정해야 함에도 공공 발주처인 LH는 속도전을 방임하며 이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건설기능인등급제 제도화와 기능학교를 통한 숙련공 양성, 적정 공사 기간 준수 등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