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명동 노점의 '바가지 요금'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행정 관청인 중구는 이달부터 가격표시제 시행에 들어갔다. 명동 노점의 음식 가격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비싼 데다 가격마저 부풀리면서 시민들이 불만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상인들의 모임인 명동상인복지회도 따가운 비판을 의식한 듯 지난 7일부터 관광객이 많이 찾는 품목을 중심으로 가격을 내리고, 전 품목의 가격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이달부터 가격표시제 시행…변화된 명동 거리
"가격표가 있었던 곳도 있고 없었던 곳도 있었는데, 가격표시제 이후 다 보게끔 세워놨어요"
여러 개의 노점을 관리하는 A씨는 관리 노점 모두 가격표를 부착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격표시제가 시행된 이후 명동 노점을 돌아본 결과, 2개 노점을 제외한 모든 곳에 가격표가 부착돼있었다. 한 시민은 가격표시제에 대해 "너무 좋게 생각한다"며 "한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편하고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모든 노점이 가격표를 부착한 것은 아니었다. 이날 2개 노점은 가격표가 있었지만 게시하지 않은 채 호객 행위를 했다. 가격표가 없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서랍 속에서 가격표를 꺼내며 "손님들이 물어보면 보여준다"고 답했다.
일부 노점의 경우는 가격표가 손님들이 쉽게 볼 수 없는 천막 사이에 숨겨 놓듯 달려있었다. 천막에 가려진 가격표는 고개를 숙이고 천장을 바라봐야 겨우 보일 정도였다.
내렸다지만…여전히 비싼 가격 어쩌나
16일 명동 일대를 취재한 결과, 일부 품목 가격 인하에도 부담스러운 가격은 여전했다. 일본에서 온 관광객은 "시부야 등 일본의 도시와 물가가 비슷하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이전에도 명동에 방문한 경험이 있다는 싱가포르 관광객은 "일부 음식의 가격이 너무 비싸 되도록 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명동의 길거리 음식 가격은 3년 새 50%가 넘게 올랐다. 2020년 6월과 2023년 6월을 비교했을 때 랍스터구이는 1만 5천원에서 2만원으로, 탕후루는 3천원에서 5천원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바가지 논란이 일자 명동의 상인들은 지난 7일부터 자발적으로 가격을 내렸다. 회오리 감자·붕어빵·군만두·핫바 4개 품목은 5천원에서 4천원으로, 오징어구이는 1만 2천원에서 1만원으로 등 모두 5개 품목의 가격을 인하했다.
하지만 가격 인하 품목이 제한적이고 참여 노점이 적어 시민들이 체감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회오리 감자 가격을 4천원으로 인하했지만 일부 노점은 여전히 5천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수십 개의 노점이 좁게 붙어있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관광지의 특성상 이용객이 가격을 비교해가며 싼 가게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중구청은 노점상들이 받는 가격을 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물가안정법 시행령에 따르면 바가지 행태는 '가격 미표시' 등으로 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이 가능하지만 가격을 표시했다면 과태료 처분조차 어렵다.
서울 시내 다른 관광 명소와 비교해도 확연한 차이
표시된 가격보다 초과 징수할 경우 불법이지만, 상품을 비싸게 판매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거리 가게 운영 규정'에 따르면 노점 상인들을 관리하면서 가격 조정을 요구할 권한도 없다.
취재진은 객관적 가격 비교를 위해 남대문 시장과 광장시장도 둘러봤다. 명동의 길거리 음식은 남대문시장과 광장시장에 비해 턱없이 높았다.
남대문시장에서 30여 년 동안 호떡 장사를 했다는 한 상인은 "오래 일한 만큼 가격을 올려 받고 싶지만 손님이 줄어서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광장시장에서 만난 40대 여성은 "빈대떡 등 가게에서 직접 만드는 음식의 가격대는 적당하다"며 시장내 음식 가격에 대체로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묵 1개 2천원, 만두 3개 4천원… 유명 식당보다 비싸
명동의 길거리 어묵 꼬치는 1개 2천원. 거리의 다른 노점도 마찬가지였다. 한 어묵 노점 상인은 "다른 곳보다 비싼 건 맞다"며 높은 가격을 인정하는 동시에 "어육 함량이 높고 사이즈도 크다"고 일반 어묵과의 차별점을 강조했다.
남대문시장과 광장시장은 공통적으로 어묵 꼬치를 1천원에 판매했는데, 두 시장의 상인 모두 "어묵 한 개에 2천원은 비싸다"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
명동에서 길거리 만두는 3개 4천원이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3'에 선정된 명동 인근 유명 음식집의 만두는 10개에 1만 2천원이었다. 길거리 만두를 9개로 환산했을 때의 가격은 1만 2천원. 유명한 식당보다 비싼 가격이었다. 과연 음식의 질과 양을 따져봤을 때 적당한 가격인지는 의문이다.
높아진 가격, 원인은?
상인들은 원자재 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도로 점용료를 지불하기 때문에 가격 상승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명동의 한 상인은 "가격이 비싼 것은 물가 상승이 주 원인"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재 2만원에 팔고있는 랍스타구이 가격에 대해 묻자 "랍스타 가격이 너무 올랐다. 이렇게 팔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상인들에 따르면 명동 노점의 점용료는 1년에 170만 원. 월평균 약 14만 원이다. 기존에 80만 원이던 점용료가 이번에 두 배 정도 오르기는 했다. 하지만 한달에 월세로 수 백 만원을 내고 있는 다른 지역 상점에 비하면 매우 낮은 점용료다.
명동의 한 상인은 "하루 쉬고 하루 장사하는 가게가 대부분이라 부담스럽다"면서도 점용료 인상이 음식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19 이후 손님이 끊긴 것도 가격 상승의 원인이다.
명동의 한 상인은 "코로나19 전보다는 이용객이 준 데다가, 중국인 관광객이 절반 이상이었는데 한중관계 악화 이후 거의 오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는 명동 만의 문제는 아니다. 남대문시장의 한 상인도 "코로나19 이후 저녁시간대 손님이 확연히 줄었다"며 울상을 지었다.
중구청은 "관광 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합리적인 판매가를 권고하고 있다"며 "명동이 관광객들 사이에서 다시 찾고 싶은 관광지가 될 수 있도록 관광객의 불편 사항을 지속해서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