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그룹이 북한에 800만 달러를 보내는데 관여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기존의 입장을 바꿔 쌍방울 측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방북을 부탁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원지법 형사11부(신진우 부장판사)는 18일 이화영 전 부지사와 방용철 쌍방울 부회장의 뇌물·외국환거래법 위반 사건 40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은 지난 재판에 이어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전 회장은 경기도의 스마트팜 비용 등을 대납하는 조건으로 무엇을 받기로 했냐는 이 전 부지사 측의 반대신문에 "향후에 미국의 제재 등이 풀릴 경우, 경기도의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김 전 회장은 "쌍방울 뒤에는 경기도가 있고, 경기도 뒤에는 대권주자가 있었기 때문에 대납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증인 신문이 종료된 뒤 재판부는 "지난 기일에 검찰 측에서 이화영 피고인이 기존 공소사실에서 미세하게 변동된 부분이 있다며 추가 증거를 냈다"며 "변호인은 그 부분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 전 부지사 측은 "이화영 피고인은 스마트팜(500만 달러) 관련해선 입장이 같다"며 "방북 비용(300만 달러)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일이고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었는데, 방북을 요청한 건 맞는 것 같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9년 1월과 5월 (쌍방울과 북한간) 행사를 하면서 쌍방울이 북한과 굉장히 밀접한 접촉을 한 것 같다고 판단했다"며 "그렇다면 방북을 한번 추진해달라는 말을 했다는 진술을 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진 않았지만, 여기서 방북의 대상은 이 대표로 풀이된다. 이 전 부지사는 2019년 11월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 대표의 방북을 위해 쌍방울이 북한에 300만 달러를 건네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부지사 측은 그동안 자신의 혐의에 대해 적극 부인해왔다. 올해 2월에는 자필로 작성한 입장문을 통해 "최근 김성태 전 회장과 쌍방울의 대북송금과 관련해 이화영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경기도에 대한 보도는 모두 허위사실"이라며 김 전 회장의 대북송금 의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법정에서 이 전 부지사 측이 진술이 일부 변경된 사실에 대해 인정하면서 검찰 수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전망이다.
검찰은 이날 이 전 부지사를 재판의 증인으로 신청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화영 피고인은 검찰 조사 때는 '재판 중이라 말을 못한다'고 하고, 재판에서 말을 하면 되지 않냐고 하면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가진다"며 "입장대로 당당하게 밝히고 싶다면 증인신문을 통해 하라"고 말했다.
이어 "김성태 전 회장이나 방용철 부회장도 같은 피고인임에도 위증의 벌을 감수하고 증인신문을 했다"며 "형평성 문제로 놓고 봐도 이 전 부지사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 전 부지사 측은 입장을 밝힐 기회는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증인신문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 전 부지사 측은 "이 전 부지사는 혐의를 부인하고, 방 부회장은 인정하는데 서로 입장이 다른 피고들에게 형평성을 대는 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증인신문을 한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경우, 위증죄까지 더해져 기소되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증인신문이 아닌 피고인 신문 방식이라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검찰 측 주장은 이화영 피고인의 입장이 정리가 됐으니, 증인신문을 통해 세부적인 쟁점을 확인이 필요하다는 취지 같다"며 "다만 그런 부분이라면 재판 후반부에 피고인의 입장이 정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증인신문에) 선뜻 동의하긴 어렵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검찰에 증인신문의 효율이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김 전 회장은 다음 재판에도 증인으로 출석할 전망이다. 다음 재판은 오는 25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