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군 정찰기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진입을 주권 침해로 규정하고 격추 가능성까지 위협하고 나서면서 한반도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북한은 10일과 11일 이틀에 걸쳐 국방성 대변인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의 세 차례 담화를 통해 미군의 EEZ 침범을 주장하며 단호한 '대응행동'을 경고했다.
여러모로 이례적인 이번 담화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점은 EEZ를 영해화 하려는 듯한 태도다. 북한은 "우리 측 군사경계선 수역은 물론 경제수역 상공도 미군 정찰자산들이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는 미국의 군사연습 마당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북한은 1977년 8월 동해는 연안에서 50해리까지, 서해는 EEZ 전체를 군사경계수역(Military Boundary Zone)으로 일방 선포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12해리 영해 규정을 무시한 셈이다.
물론 유엔해양법협약의 해양경계 규정을 놓고 이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 뿐 아니라 중국,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약 30개 나라는 EEZ에서 타국의 군사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중국이 100해리 이상 떨어진 남중국해에서 미군 함정이나 정찰기와 심심찮게 충돌을 빚는 게 대표적인 예다. 심지어 페루 등 일부 국가는 아예 200해리 영해를 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이 군사경계수역을 넘어 EEZ에까지 주권을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북한의 뜬금없이 행동에는 다각도의 포석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일단 'EEZ 침범 = 주권 침해'라는 주장을 수용하더라도 북한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은 미군 정찰기가 강원도 통천 동쪽 435km ~ 경상북도 울진 동남쪽 276km 해상 상공에서 북측 경제수역(EEZ) 상공을 8차례 무단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EEZ(200해리, 약 370km) 바깥 지점이기 때문에 EEZ 침범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정찰위성 실패 등으로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라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해) 뭔가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제는 수단이 없다보니 생억지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오는 27일 정전협정(북한 주장 '전승기념일') 70주년이란 상징적 시점을 앞두고 있지만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쥐기는커녕 존재감마저 약해지고 있다.
북한으로선 다소 무리수를 둬서라도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가 필요한 셈이다. 마침 11~12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13~14일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린다.
실제로 북한은 '참변' '충격적인 사건' 같은 위협적 언사를 구사하고, 1969년 EC-121 정찰기 격추 사건 등을 일일이 나열하며 자신의 경고가 빈말이 아님을 강조하려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하루 사이에 3회의 담화를 발표한 것은 단순한 여론전의 범위를 넘어 군사적 행동 예고에 방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이번에 '대한민국' 호칭을 처음 사용한 것도 의미심장한 측면이 있다. 일차적으로는 '2개의 한국'(Two Korea) 기조를 공식화한 것이지만, EEZ 주권을 주장한 것과도 연결고리가 있다.
'2개의 한국'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이후 30여년간 유지돼온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라는 남북관계의 기본 틀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는 통일 지향 특수관계라는 명분 하에 그동안 사실상 묵인돼온 해양경계선 분쟁을 다시 촉발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이미 수차례 무력충돌을 빚었고 여전히 불씨가 상존하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그 연장선상에서 언제든 북한 성동격서 전술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양 연구위원은 "내러티브를 중시하는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 카드가 소진됐을 때 재래식 도발로 변환하기 위한 명분쌓기에 나섰다"면서 NLL 도발도 그 방법 중에 하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