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배상금 공탁에 반발 "피해자 의사 반해 무효"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외교부에 항의 서한
외교부, 피해자 4명 대상 공탁 절차 개시
광주지법 '불수리' 결정에 외교부 "유감"

법원이 제3자 변제 해법을 수용하지 않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배상금 공탁 절차에 제동을 건 가운데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관계자들이 '제3자 변제'를 반대해 온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및 유족들을 대상으로 외교부가 공탁 절차를 개시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이를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정부가 제3자 변제안을 수용하지 않은 강제동원 소송 원고 4명의 배상금을 법원에 공탁하기로 한 데 대해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정의기억연대·민족문제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3월 징용 피해자와 그 유족들은 정부의 변제안을 수용할 의사가 없다고 명백히 밝혔다"며 "당사자 의사표시로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을 때는 변제할 수 없다는 민법 제469조에 따라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공탁은 무효"라고 밝혔다.

이어 "위법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공탁 절차를 개시한 것은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운동이 본격화하자 이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석된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이 정부로부터 돈 몇 푼 받으려고 30여년간 일본 정부와 싸워온 것이 아니다"라며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받고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단체인 시민모임은 일본 기업이 내야 할 손해배상금을 한국 정부가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거부하고 자체적인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는 임재성 변호사는 "어제 있었던 한국 정부의 공탁은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효화시키고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책시키고 피해자 권리는 소멸시키는 가장 적극적 조치"라고 지적했다.

공탁이란 채권자가 수령을 거부할 경우, 금전을 법원 공탁소에 맡겨 채무를 면하는 제도를 뜻한다. 정부가 제3자 변제안에 따라 판결금을 법원에 맡겨두고 이를 피해자 또는 유가족이 찾아가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배상 절차를 일단락 짓겠다는 의미기도 하다. 공탁을 하게 되면 표면적으로는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에 갖고 있는 법적 채권이 소멸될 수 있다.

임 변호사는 "3월 6일에는 장관이 국민들 앞에서 직접 설명했지만, 정작 정부가 피해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소멸시킬 것인지를 발표함에 있어서는 당사자 이름조차 인용할 수 없는 백브리핑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얼마나 국민들에게 이 문제의 본질을 알리기 싫어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규탄했다.

앞서 지난 3일 정부는 제3자 변제안을 거부하는 피해자·유족 4명의 판결금을 법원에 공탁하는 절차를 개시했다. 하지만 광주지방법원이 양금덕 할머니를 대상으로 신청된 공탁에 대해 '불수리' 결정을 내렸다.

광주지법은 이날 CBS노컷뉴스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정부의 공탁 신청에 대해 "양금덕 할머니가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공탁 사유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를 대상으로 신청된 공탁은 서류 미비를 이유로 반려 처분했다. 공탁을 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측이 '공탁권 처분에 대한 이의 신청'을 할 경우 법원 담당 판사는 이를 유지하거나 경정할 수 있다.

시민단체는 "이번 공탁 절차 개시는 역사정의운동 탄압의 연장선"이라며 공탁 철회를 요구하는 내용의 항의 서한을 외교부에 전달했다.

정부는 2018년 대법원이 판결한 피해자·유족 15명의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일본 피고 기업 대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지급한다는 내용의 제3자 변제안을 지난 3월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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