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민간 개발업자들을 돕는 대가로 금품을 받기로 약속한 혐의 등을 받는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구속 위기에서 벗어났다. 검찰이 박 전 특검 등에 대한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서 이른바 '50억 클럽' 의혹 수사는 제동이 걸리며 계획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30일 박 전 특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 심사)을 거쳐 "주요 증거인 관련자들의 진술을 이 법원의 심문 결과에 비춰 살펴볼 때 피의자의 직무 해당성 여부, 금품의 실제 수수여부, 금품 제공약속의 성립 여부 등에 관해 사실적, 법률적 측면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현 시점에서 피의자를 구속하는 것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 단계에서는 구속의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인다"며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전날 박 전 특검의 공범으로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양재식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양 변호사의 영장 심사를 맡은 이민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현재까지 드러난 증거자료와 이 법원의 심문결과에 비춰 볼 때 금품의 실제 수수 여부 등 범죄사실 중 일정 부분에 대해 사실적, 법률적 측면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의자에게 방어권을 보장해줄 필요성이 있는 점, 피의자의 직업, 수사기관 및 법원에서 피의자가 보여 왔던 태도,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 및 이에 더해 수사기록에 나타난 여러 사정과 피의자와 변호인의 변소 내용 등을 감안할 때 현 단계에서 피의자가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전날 진행된 영장 심사에서 소속 검사 6~7명을 투입해 A4 용지 220여쪽 분량의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범죄의 중대성, 증거인멸 정황 및 우려 등을 부각하며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 전 특검이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부수고, 주변인을 통해 사무실 PC 기록을 삭제한 '증거 인멸 정황'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박 전 특검 측은 혐의를 부인하며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령인 점과 건강 문제도 재판부에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오전 영장 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모습을 드러낸 박 전 특검은 취재진을 향해 "진실은 곧 밝혀질 것으로 확신한다"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다만 심사를 마친 뒤에는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박 전 특검은 우리은행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하던 중 대장동 개발 사업과 관련해 남욱 변호사 등 민간업자들로부터 컨소시엄 관련 청탁을 받고 금품 등 대가를 받기로 약속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수재 등)를 받는다.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서에 박 전 특검이 약속에 그치지 않고 현금 8억원을 받았다고 기재했다.
우리은행은 애초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가 있는 성남의뜰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2015년 3월 심사부 반대로 최종 불참했고, 대신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만 참여하겠다며 1500억원의 여신의향서를 제출했다.
그 결과 성남의뜰 컨소시엄은 추후 대장동 사업자 공모 과정에서 우리은행 등 국내 대형 시중은행의 PF대출 참여를 강조해 '자금 조달' 항목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검찰은 박 전 특검이 그의 측근이자 특검보 출신인 양 변호사와 공모해 2014년 11~12월 컨소시엄 출자 및 여신의향서 발급과 관련해 남 변호사 등으로부터 대장동 토지보상 자문수수료, 대장동 상가 시행이익 등 200억원 상당의 이익과 단독주택 2채를 약속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무렵 박 전 특검은 2015년 대한변협회장 선거 자금 명목으로 현금 3억원을 받은 혐의도 적용됐다.
다만 검찰은 우리은행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애초 박 전 특검이 받기로 약속한 대가도 20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남 변호사 측으로부터 대장동 사업의 주도권을 넘겨받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등으로부터 여신의향서 발급 청탁의 대가로 50억원을 약속받았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특히 검찰은 이와 관련해 박 전 특검이 2015년 4월 5억원을 실제로 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 돈은 토목업자 나모씨로부터 대장동 분양대행업자 이기성씨를 통해 박 전 특검 계좌를 거쳐 김씨에게 전달돼 대장동 사업 협약체결 보증금으로 사용됐다.
검찰은 김씨 등 민간업자들이 청탁의 대가로 이씨 등에게 자금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박 전 특검에게 이 돈을 건넸고, 박 전 특검이 다시 김씨에게 보내면서 대장동 사업의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판단했다.
박 전 특검이 민간업자들로부터 50억원을 받기로 하면서 담보 장치를 걸어두는 차원에서 5억원을 송금한 것이라는 취지다.
검찰은 우선 박 전 특검이 수수한 현금을 총 8억원으로 보고 구속영장 청구서에 기재하고 추가 수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박 전 특검 등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박 전 특검의 신병을 확보해 딸이 화천대유로부터 빌린 11억원 등 자금의 성격 등을 규명하려던 검찰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검찰은 법원의 기각 사유를 검토한 뒤 박 전 특검 등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 등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던 박 전 특검은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이날 오전 1시쯤 구치소를 나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현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