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계의 오랜 관행이었던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 문제 해결을 위해 제도개선 협의체를 꾸려 가동에 나섰다.
일명 '수술실 간호사'로도 불리는 PA 간호사는 검사·시술 등부터 대리처방·수술 보조에 이르기까지 전공의(레지던트)들이 하는 업무 상당부분을 대신해왔다. 대형병원에서도 이들이 없으면 병원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지만, 'PA'가 제도화되지 않은 한국에선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보건복지부는 '진료지원인력 개선 협의체'를 구성해 29일 오전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첫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던 지난 4월 말 '제2차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PA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행 의료법상 간호사 면허범위 밖의 일을 수행해온 이들의 역할을 보다 분명히 정리하고, 관리체계를 마련하겠다는 취지였다.
복지부가 꾸린 협의체는 현장 전문가, 관련 보건의료단체와 환자단체에서 추천한 위원 18명으로 채워졌다. 이형훈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이 정부 측 공동위원장을 맡고, 민간 측 공동위원장으로는 오태윤 성균관대 의대(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가 내정됐다.
대한간호협회(간협)에서는 조윤수 서울특별시간호사회 회장·서은정 경기도간호사회 이사가 참여했고, 대한병원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병원간호사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한의학회 등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시범사업 참여기관 등 현장에서는 신연희 분당서울대병원 간호본부장,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장, 박형기 순천향대 부속 서울병원 신경외과 교수 등이 참여한다.
다만, 정부가 참여위원 추천을 요청했던 대한의사협회는 '불참'을 선언한 상태다. 의협은 지난 22일 "임상전담간호사는 의료법상 별도의 면허범위가 정의되지 않고 진료보조인력으로서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의료행위 영역은 허용될 수 없다"며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협의체는 현행 의료법 체계 안에서 △환자 안전 강화 △서비스 질 향상 △팀 단위 서비스 제공 체계 정립 △책임소재 명확화 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과학적 근거와 현장에 기반한 논의를 위해 진료지원인력과 임상의사, 전공의, 의료기관장 등을 대상으로 집단심층면접(FGI·Focus Group Interview)을 병행해 실시하기로 했다.
매달 1~2차례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개선방안을 논의·마련할 방침이다.
오태윤 교수는 "2000년대 초부터 'PA'라고 불리는 진료지원인력이 활용되어 왔는데 이는 필수 중증의료 분야에서의 의료인력 부족으로 인한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다"며 "이 문제에 대한 폭넓은 검토와 논의를 통해 의료질 향상과 환자의 안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훈 실장도 "의료법 체계 내에서 PA에 대한 적절한 관리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보건의료인력의 효율적 활용과 함께 환자에게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또 "협의체에 참여한 각계 위원들이 환자와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도록 열린 자세로 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정부는 지난 2015년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 제정되며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이 줄고 의사 수 부족과 수도권 병상 증가 등이 맞물리면서 PA가 급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흉부외과, 비뇨의학과 등 필수의료에 속하는 외과계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신규 간호사 시절부터 차출되거나 선임에게 교육받은 대로 일해온 PA 간호사들은 본인의 업무가 법적 면허범위 내에 속하는지를 두고 불안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의료사고 발생시 책임소재도 불분명하다.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직군이 아니다 보니 체계적인 교육이나 훈련도 없고, 소속 병원에서의 적절한 관리체계도 없는 실정이다.
간협은 지난달 간호법 무산 이후 일선에서 PA 간호사 등이 불법진료 지시를 거부하는 '준법 투쟁'을 벌여왔다. 지난 26일에는 자체 신고센터를 통해 관련 사례를 접수한 의료기관 81곳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복지부는 2021년부터 올 4월까지 세 차례 정책연구를 통해 현장 실태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PA 간호사에 대한 가이드라인 안을 마련해 8개 병원에 시범적용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