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 심의 법정시한(오는 29일)이 이틀 앞으로 박두한 가운데 사용자 측이 내년 최저임금 동결을 공식 요구했다.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8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 측은 2024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으로 시급 기준 9620원을 제시했다. 올해 최저임금과 같은 액수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류기정 전무는 "소상공인과 영세‧중소기업 지불능력은 이미 한계상황에 직면했다"며 "내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인상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위원 측은 이날 회의 시작 전에 앞선 제7차 회의에서 밝힌 대로 올해보다 26.9% 인상된 1만 2210원을 내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으로 제출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 양측의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최초제시안이 제출되었고,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논의가 개시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최저임금 수준에 관한 논의는 사실상 무산됐다.
노동자위원 측이 '고용노동부의 부당한 최저임금 심의 개입' 등을 이유로 회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현재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은 정원 9명 가운데 1명이 공석이다.
노 "정부 비상식적인 노동 탄압과 폭거 난무로 회의 참석 어려워"
노동부가 '품위 손상'을 이유로 구속 중인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 해촉을 제청했고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재가했기 때문이다.
금속노련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은 노동부 요청에 따라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을 노동자위원으로 재추천했으나 노동부는 이를 거부했다.
노동부가 밝힌 거부 사유는 '김만재 위원장이 김준영 사무처장과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27일 8차 회의에서 노동자위원 측은 "내년 최저임금 심의 법정시한이 임박했음에도 노동부가 노동자위원 재추천을 거부하는 것은 심의에 개입하려는 의도"라고 강력 비난했다.
한국노총 류기섭 사무총장은 "정부의 비상식적인 노동 탄압과 폭거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더는 최저임금위원회 회의 참석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자위원 8명 전원은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박준식 위원장의 개의 선언 전이었다.
최저임금법이 규정한 최저임금위원회 의결정족수는 재적위원(노 9명, 사 9명, 공익위원 9명) 과반수와 사용자위원과 노동자위원 각 1/3 이상 출석이다.
그런데도 박준식 위원장은 사용자위원과 공익위원 각 9명씩, 18명만 참석한 상태에서 회의를 강행했다.
노사 요구 수준 현격한데 양측 논의 전무…29일 법정시한 넘기나
이와 관련해 최저임금위원회는 "위원장이 근로자위원 측에 두 차례에 걸쳐 회의 참여를 요청했으나 근로자위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동자위원이나 사용자위원이 2회 이상 출석 요구를 받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노·사위원 각 1/3 이상 출석 없이도 의결정족수가 충족되는 점을 의식한 해명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동자위원 측 회의 불참 명분은 '위원회의 노·사·공익 위원 동수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어서 '정당한 이유 없이'에 해당하는지를 놓고도 논란이 일 전망이다.
한국노총 류기섭 사무총장은 이날 회의 퇴장 직후 기자들에게 "최저임금 심의 시한이 촉박한 만큼 김만재 위원장이 반드시 노동자위원으로 선임돼야 한다"며 회의 복귀 조건을 제시했다.
금속노련이 한국노총 산하 최대 산별조직이고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가장 큰 조직인데다가 김 위원장이 이전에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을 지낸 만큼 대체 불가라는 설명이다.
제9차 전원회의는 내년 최저임금 심의 법정시한인 오는 29일 열린다.
그러나 노사 최초 요구안 격차가 현격함에도 27일 8차 회의 파행으로 양측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만큼 단 한 차례 회의로 결론이 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노동자위원 측 요구대로 노동자위원 1명 공석 사태가 해소될지도 불투명해 결국 법정시한을 넘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