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논평] 칼을 가지는 자는 칼로 망하지만, 십자가의 자기희생은 평화를 만든다 - 정종훈 교수



1950년 6월 25일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입니다. 올해 한국전쟁 73주년이 되는 날은 그날과 마찬가지로 일요일입니다. 모두가 휴일을 즐기며 행복감을 만끽하는 날에 대한민국은 인민군의 포성과 탱크부대를 앞세운 지상군의 진격으로 청천벽력의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의 결정적인 출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침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1년 전 미군 철수를 앞두고 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호소하고자 했던 이승만 대통령이 국지전(局地戰)을 여러 차례 도발했고, 그것이 전면전(全面戰)의 명분이 되었다고 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

1950년 1월 12일, 미국의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소련과 중국의 영토적 야욕을 저지할 목적으로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 관련한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태평양에서 미국의 극동 방위선은 알류산 열도, 일본 본토를 거쳐 오키나와섬에서 필리핀으로 연결된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이 방위선 밖에 위치한 나라의 안보에 대해서는 군사적 공격이 있어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애치슨 라인'은 대한민국을 명백히 제외했고, 북쪽의 김일성과 소련의 스탈린이 정세를 오판하고 전쟁을 일으키게 한 빌미로 작용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임의로 분할 점령한 데 있습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인 일본을 독자적으로 점령하는 대신, 승전국가인 소련에 대해서 보상할 목적으로 한반도의 38선 북쪽을 제공했습니다.

미국 군대는 남쪽에 점령군으로 들어와서 일본에 적극 협력했던 한국인들을 군대와 경찰 조직에 다시 기용했습니다. 그리고 여운형 선생을 비롯한 국내 주요 인사들이 국가재건을 위해서 조직한 '인민위원회'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미국의 분단정책은 한국인의 분열을 상시화했고, 일제 청산과 통일된 단일국가의 기회를 박탈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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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국전쟁 발발의 원인은 매우 복잡합니다. 그러나 전쟁이 초래한 비극만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전쟁을 중지하자고 정전협정을 맺었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종전선언을 한 적이 없고, 평화협정을 통해서 평화 체제로 전환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남과 북이 긴장과 대립, 갈등 속에서 군비경쟁을 하고, 특히 북쪽이 핵무장까지 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한국전쟁의 당사자인 '남과 북'은 관련국들과 함께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맺어 상호 신뢰와 상호 교류, 상호번영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실 때,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할 것이다."(마태 26:5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칼을 가진 자가 칼을 들어 상대를 당장에 제압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역시 오래지 않아서 칼을 더 잘 쓰는 다른 자에게 제압당할 것이 분명합니다.

폭력은 언제나 다른 폭력을 낳는 법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로 막힌 세상의 모든 담을 허무셨고, 원수 사이에 화해를 이루셨으며, 모두가 참된 평화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지금처럼 남과 북이 군비확장과 핵무장으로 서로 경쟁하면, 전쟁이 재개될 때 당연히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한 전쟁은 한반도의 모든 생명과 환경을 일시에 파멸할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국가안보와 국민생명을 위한 수단일 수가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선제타격과 강력한 응징, 참수작전 등을 운운하며 언제라도 전쟁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위협하는 것은 모두가 망하는 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73년 전의 비극을 돌아보며,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를 만드는 일에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CBS 논평이었습니다.

[정종훈 교수 / 연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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