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have I ever'라는 드라마가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20년 4월 넷플릭스에서 시즌1을 시작한 후 최근에 마지막 시리즈인 시즌4를 공개한 이 드라마는 이달 둘째주에 영어권, 비영어권에서 각각 2위를 차지하더니, 급기야 지난주에는 영어권, 비영어권 모두에서 시청률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기사 제목을 보아하니 지난 20일(현지시간) 닷새 일정으로 미국을 국빈방문한 인도 모디 총리와 이 드라마가 관계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대체 어떤 연관이 있다는 걸까.
이미 눈치챈 분도 있겠지만, 'Never have I ever'는 인도계 10대 소녀가 주인공을 맡고 있다. 인도계 주연 드라마가 어디 이뿐이냐는 볼멘 소리도 나올 수 있지만, 굳이 이 드라마를 콕 찍어올린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 드라마 속 주인공 '데비'는 어쩌면 현재 미국사회에 스며들어있는 인도계 미국인의 위치·위상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Never have I ever'는 10대 소녀인 인도계 미국인 '데비'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다뤘다. 드라마속 데비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을 극복하고 성적, 진로, 사랑, 가족의 문제를 용감하고 씩씩하게 대처해나간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그저 당연스럽고 평범해 보이는 인도계 미국인 소녀의 주변 환경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데비 가족과 친척들의 직업이었다. 데비의 엄마는 피부과 의사이다. 같이 사는 사촌 언니는 칼텍(캘리포니아 공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삼촌은 보안업체 대표다. 데비는 고등학교에서 1,2위를 다투는 수재이다.
드라마라는게 현실성이 결여되는 순간 몰입도는 급격히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현재 넥플릭스 전세계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으니 데비 가족들의 미국내 사회적 위치·직업을 묘사한 것이 인도계의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라고 단정짓기도 어렵다.
물론 이 드라마의 제작자가 인도계여서 팔이 안으로 굽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본질'을 흐리는데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됐든 시즌4에서 데비는 결국 아이비리그 프린스턴 대학 입학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워싱턴 D.C와 접한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는 한국 드라마 '스카이캐슬'로 때아닌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극중 '김주영 선생'이 페어팩스 출신의 입시 코디네이터로 등장하면서였다.
그런데 실제로 페어팩스 카운티는 미국 최고의 공립학교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어 일부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이곳이 '미국의 8학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미국 전체를 놓고봐도 페어팩스는 학구열 상위권에 속하는 지역이다.
한국의 학부모들이 재정적 부담이 큰 사립학교가 아닌 페어팩스 카운티의 공립 초·중·고등학교를 차선으로 꼽으면서 이곳의 한국인 유학생들도 크게 늘어났고, 이들 중 빼어난 성적을 보이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항간에는 페어팩스 지역에서 한국 학생들이 많은 학교는 상대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워 다른 나라 학부모들이 일부러 기피한다는 얘기도 돌았다.
그런데 이곳의 요즘 분위기는 한국계 등 동아시아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점점 인도계가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초등학교때는 비슷비슷했던 인도계 아이들의 성적이 중·고교로 가면서부터 소위 '넘사벽'이 되면서 인도계가 많은 학교를 다른 나라 학부모·학생들이 꺼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인들조차 해당 학교에 인도계가 얼마나 있는지를 보고, 전학 여부를 결정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세상은 정말로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최근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의 인도계 인사들의 활약상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인도계 미국인인 아제이 방가 전 마스터카드 최고경영자를 를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한 바 있다. 인도계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주재 미 대사는 2024년 공화당 대통령 예비후보로 나섰다. 인도계 이민 2세로, 바이오기업 로이반트 사이언스를 창업한 '백만장자' 라마스와미도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혔다.
인도계로 더 유명한 인사로는 카멀라 해리스가 미국 부통령을 빼놓을 수 없겠다. 여기다 미 하원에는 5명의 인도계 의원들이 있다. 영국으로 자리를 옮기면, 인도계 이민자 출신 리시 수낵이 최초의 유색 인종 총리가 됐다.
인도계 미국인의 IT분야나 의학 분야 비중이 큰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인도계 미국인은 미국 인구의 1%에 불과하지만, 의사 직업 군의 7%, IT분야 인력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인도계의 약진 배경에는 '언어'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고 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영국의 식민지배였지만, 그 영향으로 영어 습득에 용이했던 점이 다른 국가 이민자들에 비해 유리하게 작용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높은 교육열과 인도 본토의 눈부신 경제 성장도 큰 역할을 했다.
여기에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중국 견제가 인도와 인도계에 더 많은 기회를 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모디 총리의 방미에 '국빈'이라는 이름과 '붉은색 주단'이 깔리고 'Never have I ever'가 시청률 고공행진을 벌이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모디 총리는 22일(현지시간) 대략 7000명의 관계자가 도열한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 도착해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백악관에서 열리는 이 성대한 환영식은 14억 인도 인구의 자부심이자 미국에 거주하는 400만 명 이상의 인도계 미국인에게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