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이 껄끄러운 국방 현안인 '초계기 사건'을 재발 방지책 마련을 통해 봉합하기로 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게 됐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 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참석을 계기로 하마다 야스카즈 일본 방위상과 회담을 갖고 이같이 합의했다.
이 장관은 회담 후 기자들과 만나 초계기 사건에 대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실무협의부터 시작해 해결해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다만 초계기 사건의 원인과 책임에 대한 한일 양측의 기존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확인했다.
초계기 사건은 2018년 12월 동해상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P-1 초계기가 우리 해군의 광개토대왕함(구축함)에 접근하면서 일어났다.
일본은 광개토대왕함이 자국 초계기에 사격통제레이더를 비췄다고 주장했지만, 우리 측은 오히려 일본 초계기가 먼저 저공으로 위협비행했다고 반박하며 수년째 대립하고 있다.
국방부의 이번 방향 전환은 윤석열 정부의 '미래 지향' 대일 정책기조를 반영했다. 과거 쟁점은 일단 덮어두고 안보협력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회담 전까지 실무협의를 진행했고, 그 협의는 상호 입장을 재확인하고 어떠한 해결 방안이 바람직한지를 논의, 그 결과 재발 방지책을 만드는 방향으로 조율돼 회담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초계기 사건에 대한 양측 입장차가 워낙 커서 고육지책 삼아 재발 방지책 수준의 절충안을 도출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원인 및 책임 규명 없는 재발 방지책은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건이 일어난 이유를 모르는데 사건의 재발을 막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일 양측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르다. 이런 상황에선 재발 방지책이 제대로 만들어질 리 없고 설령 만들어진다 해도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국방부는 초계기 사건 직후 '일본 자위대기가 두 차례 경고에도 응하지 않고 근접 비행하면 사격레이더를 조준한다'는 지침을 내렸고 현재 유지하고 있다.
최근 일본 언론이 한일 국방장관회담을 앞두고 한국 측이 이 지침을 철회할 것이라 보도했지만 국방부는 즉각 부인했다. 일본 역시 이와 관련한 어떠한 지침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제2의 초계기 사건 같은 돌발 상황이 재현된다면 재발 방지는커녕 이번에는 오히려 더 큰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경호 국방부 부대변인은 5일 브리핑에서 "(재발 방지책과 관련해) 앞으로 어떤 논의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한 번 지켜봐야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하고 추가 언급을 자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