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인간을 대신할 거란 막연했던 전망이 어느새 현실로 다가왔다. 심지어 단순 반복적인 업무가 아닌 전문직에서 'AI 대체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챗GPT가 세상에 나온지 불과 6개월 만이다.
일각에서는 AI의 일자리 잠식이 점차 확대될 거란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반면 AI라는 신기술로 일자리를 박탈 당하기보다는 되려 직업이 다양해 질거란 긍정적인 관측도 적지 않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일(현지시간) 챗GPT가 인간의 일자리를 뺏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마케팅과 소셜미디어 콘텐츠 부문에서 AI로 인한 실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스타트업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한 올리비아 립킨(25)의 사례를 소개했다.
회사의 유일한 카피라이터였던 립킨은 챗GPT 출시 이후 업무가 점차 줄더니 지난 4월 해고를 통보받았다. 사측은 해고 사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립킨은 "회사 임원들이 '카피라이터를 고용하는 것보다 챗GPT를 쓰는 게 더 싸다'고 언급한 글을 보고 왜 해고됐는지 이유를 알게 됐다"고 밝혔다.
립킨의 사례처럼 AI의 일자리 대체는 최근 들어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미국 인사관리 컨설팅 회사인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CG&C)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해고 이유가 AI로 명시된 근로자 수는 39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폐업·시장상황 등 17가지 감원 사유 중에서 7번째로 많은 규모였다. 블룸버그는 "보고서에서 인력 감축 원인으로 AI가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AI로 인한 인력 감축이 이제 막 시작했다는 걸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특이점은 과거 기계가 인간의 단순 반복적인 노동을 대체한 것과 달리 지금의 AI는 고임금 전문직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이선 몰릭 교수는 "과거 자동화의 위협은 힘들고 더러우며 반복적인 작업에 불어닥쳤지만, 이제는 고학력·고소득층의 창의적인 일을 정면으로 겨냥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생성형 AI가 전세계에서 3억개의 일자리를 감소시킬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기계처럼 물리적인 육체노동을 대신하기는 어렵지만,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과 창작 등 인간의 두뇌가 활용되는 영역에는 발을 뻗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AI의 일자리 대체를 무작정 우려하기보다는 또 다른 일자리 창출의 전환점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자동화 논쟁 때도, 80년대 IT 논쟁 때도 기술이 사람을 대체할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뒤따랐지만 항상 맞았던 건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비용 대비 효과가 적은 업무의 경우 기술의 등장에 맞춰 일정 수준까지는 일자리 수가 뚝 떨어지지만, 기술과 관련된 새롭고 또 전문성을 요구하는 유형의 일자리들이 일제히 등장했다"고 진단했다.
AI가 전문직을 대체할 만큼의 수준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몰릭 교수는 "고급 법률 분석이나 창의적인 글쓰기, 예술 분야는 인간이 여전히 AI를 능가하기 때문에 쉽게 대체되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미국 기술전문매체 CNET은 최근 AI로 작성한 기사 77건을 송고했지만, 사실관계에서 오류가 발견돼 AI 활용을 중단했다. 미국의 한 변호사는 자신이 맡은 사건과 유사한 판례를 챗GPT에서 찾아 법원에 제출했는데, 모두 AI가 작성한 위조 판례로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임운택 교수는 "기술의 등장과 존재 자체를 평가하기보다는 이같은 기술을 우리가 어떻게 활용하고 통제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며 "다양한 변수들을 다루는 건 결국 사회다. 비용 절약과 같은 기업의 측면보다는 AI의 활용과 통제 방법을 고민하는 사회적 논의가 보다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