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지자체가 지역 장애인 시설 조성 사업 계획을 갑자기 변경하면서 이미 지원이 확정된 국비와 시비 수억 원을 반납하게 됐다. 지역에서는 구청장 공약 이행을 위해 국비를 반납하면서까지 사업 계획을 변경한 것은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부산CBS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 동구청은 지난 2021년 11월 보건복지부의 '2022년도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기능보강 공모사업'에 선정돼 국비와 시비 등 3억 6천만 원을 확보했다. 구청은 여기에 시 특별교부금 9억 원과 구비 6억 원 등을 투입해 지역 장애인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장애인보호작업장' 건립 사업을 본격화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갑자기 국비 사업 계획을 모두 폐지했다. 그 대신 구 자체 사업으로 장애인회관을 짓겠다며 실시설계 용역을 벌이는 등 사업 방향을 완전히 변경했다. 이 때문에 전체 사업비 가운데 국비와 시비 일부가 빠지면서 구청이 부담해야 할 사업비는 기존 6억 원에서 9억 6천만 원으로 늘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해당 사업이 지난해 공모에 선정돼 예산을 교부했지만, 지자체가 예산 정산보고서를 통해 사업 계획을 폐지한다는 내용을 알려왔다"며 "예산은 전액 반납받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동구청은 사업을 갑자기 변경한 이유에 대해 '지역 장애인협회의 요청'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구청에 따르면 동구장애인협회는 "지역 등록 장애인이 대부분 50대 이상인 만큼 구직 연령대의 장애인이 이용하는 작업장보다는 회관을 지어 지역 장애인 활동의 거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구청에 전달했다.
지역에서는 구청 설명과 달리 기존 장애인 직업 시설은 규모가 작아 시설 확충이 시급하다며, 구청이 지역 장애인 의견을 제대로 수렴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 지역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관계자는 "동구 직업재활원의 경우 중증장애인 50명 정도가 일할 수 있는 규모로 수용 인원이 많지 않다. 지금도 일하고자 하는 대기자가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용 연령층도 3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해 구직 연령대에 제한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부산장애인총연합회 관계자 역시 "부산지역 등록장애인구가 17만여 명인데 만 65세 이상은 벌써 50%가 넘었다. 장애 인구 고령화는 동구뿐만 아닌 부산지역 전반의 특징"이라면서 "동구에 부산시가 운영하는 장애인종합회관이 있는 상황에서 또 회관을 조성하겠다는 결정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구청이 이처럼 국비를 반납하면서까지 사업을 변경한 것은 지난해 취임한 김진홍 동구청장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무리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구청장은 지역 장애인협회 사무실 신축이나 리모델링, 장애인회관 개소 등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실제 구청은 장애인회관을 만든 뒤 지역 장애인협회 사무실을 핵심 시설 중 하나로 마련할 계획이다.
동구의회 이희자 의원은 "동구는 재정자립도가 낮고 복지예산의 구비 부담도 많이 늘어난 상황인데도 국비까지 반납하면서 사업 목적 자체를 무리하게 틀었다"며 "공약 이행도 중요하지만, 공약 자체의 목적이나 정당성 등 본질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구청은 구청장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것은 사실이라며, 장애인 회관이나 협회 사무실 모두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동구청 관계자는 "장애인 회관은 제2종 근린생활시설이기 때문에 협회 사무실 등 지역 장애인 거점 역할은 물론 작업장도 운영할 수 있어 종합적인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다"며 "협회 사무실이나 장애인회관 시설 개선이 필요해 구청장 공약에 포함된 것도 맞고, 이를 이행하는 목적도 맞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