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정부가 한 달 하고도 보름 넘게 미뤄왔던 전기와 가스요금을 오늘 각각 5% 가량 올렸습니다. 올린 요금은 당장 내일부터 적용되는데요, 4인 가구 기준 월 평균 전기는 3020원, 가스는 4400원 정도 부담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실제로 요금이 그렇게 나올지 궁금한데요, 산업부 이정주 기자와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이 기자, 지난주 금요일에 한전과 가스공사의 자구책 발표 이후 오늘 정부가 요금 인상을 단행했네요?
[기자] 네. 정부가 오늘 전기, 가스요금 인상안을 발표했습니다. 2분기 그러니까 당초 4월 1일부터 적용했어야 할 요금 인상안이 한 달 넘게 지연된 건데요. 전기, 가스요금 각각 5.3% 정도 올랐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전기요금은 kWh(킬로와트시)당 8.0원, 가스요금은 MJ(메가줄)당 1.04원 올랐습니다.
4인 가구 기준 한 달 전력사용량이 332kWh라고 가정할 때 올해 초 대비 월 전기요금이 약 3020원, 가스요금 역시 4인 가구 기준 한 달 사용량을 3861MJ이라고 가정할 때, 월 가스요금이 약 4400원 증가하는 수준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입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의 발언 들어보시죠
[인서트]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에너지 공급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한전, 가스공사의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전기·가스요금의 조정이 불가피"
[앵커] 일단 대강 요금이 어느 정도 오른다는 건 알겠는데요. 이 기자, 정부가 제시한 대로 매월 전기는 3020원, 가스는 4400원 이렇게 오르나요?
[기자]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해 겨울 난방비 폭탄 사태 혹시 기억 하실까요. 작년 10월이죠. 전기, 가스요금 인상안 발표 당시에도 제가 이 자리에 나와서 설명을 했었습니다. 당시 이른바 평균의 함정을 지적했습니다. 통상 에너지 요금은 가구당 계산법을 쓰는데, 1인, 3인, 4인 가구 등등 가구 형태가 다양해서 평균치 추산이 크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킬로와트시 등등 어려운 용어가 너무 많습니다. 일반 시민들이 알기 쉽게 정부가 가구당, 또는 4인 가구당 평균 요금이 얼마 올린다고 하지만, 사실 이 설명 자체가 허점이 너무 많습니다. 작년 10월 1일에는 가스요금이 월 평균 5400원, 퍼센트로는 15% 정도 오른다고 했지만 막상 겨울이 되고 나선 난방비 폭탄 논란이 일었습니다. 전체 요금을 가구 수로 나누는 방식으론 적정 예상치를 도출하기 힘든 실정입니다.
[앵커] 이 기자가 보기엔 이번에도 난방비 폭탄 사태의 재현, 그러니까 냉방비 폭탄 사태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건가요?
[기자] 제가 보기엔 냉방비 폭탄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지금 정부 발표로는 매월 전기요금은 3020원 정도 오를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고지서에선 훨씬 더 많은 금액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평균의 함정 이외에도 전기요금은 누진 구간이라는 독특한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가스요금은 쓴 만큼 지불하는 반면, 전기는 특정 구간이 지나면 단가 자체가 2배, 3배 등 이렇게 뛰게 됩니다. 이 부분을 한전에 자세히 물어봤더니 현재 누진 구간은 2개로 나눠져 있습니다.
한 여름철인 7~8월에만 누진 구간이 조금 완화되는데, 총 구간은 3개입니다. 1단계는 0kWh에서 300kWh로 kWh당 전기요금 단가는 120.0원입니다. 2단계는 300kWh에서 450kWh까지로 단가는 214.6원입니다. 3단계는 451kWh 이후 구간인데 이 구간에서 단가는 307.3원입니다.
7~8월을 제외한 1~6월, 9~12월은 1단계가 200kWh까지이고, 2단계는 200kWh에서 400kWh까집니다. 3단계는 401kWh 이상 구간이구요. 누진제의 핵심은 어떤 구간에 자신이 들어선 지도 모르고 냉방 기기를 흥청망청 사용하다가 사후에 요금 폭탄 고지서를 받게 된다는 점입니다.
[앵커] 결국 에너지의 거의 전량을 수입하는 우리나라 구조상 원자재들의 원가와 소비자 가격의 차이가 근본 원인이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석유와 LNG 등을 99% 수입합니다.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인데요. 다만 유럽은 소비자 가격이 즉시 연동이 됩니다. 이를 테면 독일은 지난해 겨울 크리스마스트리 점등까지 제한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정부가 전기요금의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다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올리지 못했고, 물가상승 우려까지 겹치면서 지연됐습니다. 내년 4월에는 특히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올해 하반기로 갈수록 민심 이반을 우려해 인상은 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발언 들어보시죠
[인서트]
"지금의 요금인상 수준으론 사실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를 전혀 메울 수 없다. 원가에 맞게 비용을 인상시키고 요금을 인상시키는 게 원칙"
[앵커] 그렇다면 이 정도 인상으론 누적 적자만 38조원에 달하는 한전의 존립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데, 채권 발행 문제는 어떤가요?
[기자] 한전은 지난해 32조원에 이어 올해 1분기 6조2천억원 등 누적 적자가 40조원에 육박하고 있어 '소폭' 요금 인상에 그치면서 위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말 한전의 재무 위기가 정점에 달하면서 여야는 한전채 발행 한도를 기존 '적립금‧자본금 합산의 2배'에서 5배로 대폭 늘리긴 했는데요.
개정된 법안 시행에 따라 한전채 발행 한도는 약 104조원으로 크게 늘었지만, 이달 초까지 이미 발행한 한전채는 약 77조원에 달합니다. 올해 들어 발행한 한전채만 약 9조9천억원으로 지난 2021년 발행 총액인 10조4천억원과 비슷한 수치라 채권의 추가 발행도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 발언 들어 보시죠.
[인서트]
"직접 재정투입이나 한전채 발행이 있는데 직접 재정 투입도 쉽지 않다. 세수가 안 좋아서 재정이 안 좋다. 한전채 발행도 쉽지 않다"
경제계는 오늘 정부의 인상 단행에 대해 일정 부분 불가피한 조치임을 수긍하면서도 에너지 수급 안정화를 위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우리도 유럽처럼 원가에 연동되는 가격체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앵커] 네, 잘 들었습니다. 이상 산업부 이정주 기자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