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들기]OTT 공세·무너진 홀드백…극장 역할 확대 중요

지난해 한 극장의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황진환 기자
팬데믹 기간 동안 급성장한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들의 공세가 이어졌고, 팬데믹 기간 티켓값이 2019년 1만 2천원에서 지난해 1만 5천 원으로 3천 원이 인상됐다. 여기에 극장 개봉작이 OTT로 향하는 시간이 짧아지거나 아예 극장 개봉을 건너뛰는 사례가 늘어나며 관객들은 OTT와 극장을 놓고 '가성비'를 저울질하고 있다.
 
그러나 볼만한 영화가 나오면 관객들은 극장으로 향하고, 특히 OTT에서는 만날 수 없는 특수관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결국 관객들이 극장 행을 선택하도록 하는 데 필요한 건 높아진 관람료라는 진입장벽을 넘을 수 있는 볼만한 영화가 꾸준히 나오는 것 그리고 OTT와 달리 극장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을 얼마나 제공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티켓지수로 알아본 영화관람가격 적정성 점검' 캡처.

韓 관람료 중간 수준이지만 상승률 높아 체감 ↑


영화진흥위원회가 발간한 '영화티켓지수로 알아본 영화관람 가격 적정성 점검'에 따르면 GDP 상위 20개국의 2021년 평균 관람가격을 포커스(Focus)와 옴디아(Omdia) 집계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한국은 각각 10위, 9위로 중간 수준이다. 다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19년 대비 2021년 한국의 평균 관람가격 상승률은 14.4%로, 같은 기간 △중국 8.6% △일본 5.2% △미국 4.5% △프랑스 3.7%와 비교하면 높은 수치다.
 
또한 평균 관람가격과 최저시급을 기준으로 했을 때, 영화 1편 관람을 위한 노동시간인 영화티켓 부담지수는 2021년 △프랑스 40분 △미국 46분 △한국 66분 △일본 91분 △중국 96분 순이었다. 한국의 영화티켓 부담지수는 5개국 평균치인 68분에 가까웠으나, 팬데믹 기간 중 관람가격 상승률이 높은 한국(9.5%)은 중국(3.0%) 일본(1.9%) 프랑스(-1.7%) 미국(-7.2%)와 비교해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코픽은 "한국의 영화 관람가격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비싸다고 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영화 평균 관람가격은 GDP 상위 20개국의 평균 관람가격 순위에서 중간인 10위였고, 영화티켓 부담지수와 구매력 지수 모두 주요 5개국의 평균치에 가까웠다"며 "그러나 팬데믹 이후 세 차례에 걸쳐 급격히 인상되며 가격 상승 폭이 체감상 더 크게 다가온 것이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티켓지수로 알아본 영화관람가격 적정성 점검' 캡처.
그러다 보니 관객들은 영화관에서 관람해야 하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를 구분하려는 경향이 더욱 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영화의 흥행 부진이 이어지자 일각에서는 극장 관람료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월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주최한 '디렉터스 체어: 스페셜 토크'에서 최동훈 감독은 중국을 예로 들며 관람료 인하가 위기를 타개할 방안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극장 관계자들은 관람료 인하 대신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황재현 CJ CGV 전략지원담당은 11일 CBS노컷뉴스에 "지금은 관객들이 지불하는 가격 보다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고 차별화된 경험 마케팅이 필요하다"며 "고객이 느끼는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극장을 포함해 영화 업계에서 같이 해야 할 거라 본다"고 말했다.
 
또한 관람료 인하가 한국 영화계나 극장 위기를 벗어날 최선의 방안이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뮤지컬, 클래식 등 공연료가 모두 올랐지만 유독 영화에 대해서 말이 나오는 건 아무래도 대중적인 콘텐츠이기 때문"이라며 "팬데믹 기간 관람료가 갑자기 많이 올라 심리적인 부담감이 컸던 건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 관람료를 내린다고 영화를 많이 볼 거냐는 다른 문제"라고 짚었다.

쿠팡플레이 홈페이지 화면 캡처.

단축된 홀드백, 관객들에게도 영향…홀드백 강화 한목소리

 
OTT가 쏘아 올린 공은 단순히 관람료 문제만이 아니다. 극장 개봉 후 영화가 OTT로 향하는 기간, 이른바 '홀드백'(한 편의 영화가 다른 수익과정으로 중심을 이동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다 보니 관객들은 OTT를 더욱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
 
2020년 픽사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은 개봉 2주 만에 온라인 시장으로 갔고, 유니버설은 '더 헌트'와 '인비저블 맨'을 시작으로 극장 개봉과 동시에 온라인으로도 공개했다. 워너브러더스는 '매트릭스 4' 등 신작을 자사 OTT HBO맥스에 동시 공개한다고 밝혀 대대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이처럼 많은 영화가 OTT로 가는 기간이 대폭 축소됐다. 지난해 손익분기점을 넘은 대작 중 하나인 '한산: 용의 출현'을 비롯해 '비상선언'이 개봉 한 달 만에 쿠팡플레이로 향했다. 이를 두고 코픽은 "여름 시즌 대작 영화 두 편이 IPTV와 VOD를 건너뛰고 OTT 독점 공개를 택함에 따라 기존 홀드백 관행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고 예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플레이가 극장 상영 중인 영화를 무료로 공개하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알려지며 홀드백 붕괴로 인한 극장 위기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졌다. 홀드백 강화에 대한 법 제도화 등 정부의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이유다.
 
황재현 전략지원담당은 "홀드백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며 "법 제도화가 필요하고, 그게 어렵다면 업계 내에서 자율적으로 영화 산업 선순환을 위해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제균 감독 역시 "조금 있으면 OTT에 나올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잘되는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더 잘되고 안 되는 영화는 더 안 되는 양극화 현상을 보인다"며 "적어도 홀드백 기간이 영화 업계에서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CGV 홈페이지 화면 캡처

대면 경험 통합하는 극장 역할 확대 필요한 시점

 
그렇다고 업계에서도 정부의 지원만 바라볼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극장 역시 높아진 관람료라는 장벽을 넘어 관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극장이란 플랫폼만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PwC가 지난해 6월 20일 발표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공연예술과 더불어 영화 산업은 2020년 70.5%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2021년부터 전 세계 영화관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 여전히 높은 수요를 보이고 있어 2025년까지 25% 이상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예측했다.('2022년 미국 영화관 현황 및 영화 관람가격 추이' 참고)
 
해당 리포트에서 하은선 영화진흥위원회 미국통신원은 "봉쇄령 이후 변화된 소비자 행동 방식을 염두에 두고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대체된 극장이 제 역할을 되찾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며 "집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현장 체험, 즉 '영화관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에 중점을 두고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스크린 고급화, 가상현실(VR) 체험 제공 등 다양한 옵션과 함께 대면 경험을 통합하는 극장의 역할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영화진흥위원회 '2022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캡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기술 특별관이다. 지난해 '탑건: 매버릭'은 개봉 3주 차에도 4DX나 4DX 스크린 등 특수관 전석 매진 행렬을 이어갔고, '아바타: 물의 길' 역시 개봉 첫 주 4DX 좌석판매율이 90%에 육박하는 등 엔데믹 이후 기술 특별관 관람객 비중이 높아졌다.
 
황재현 전략지원담당은 "1차 플랫폼으로서의 관객들이 극장을 찾을 가치를 제공하는 데 힘써야 할 것 같다"며 "4DX나 스크린X 같은 기술 특별관에 대한 투자, 사운드 등 극장 시설 투자 지속, 마케팅 및 투자배급사와 협력해 콘텐츠에 차별화된 경험 마케팅을 제공하면 고객들이 더 큰 즐거움과 가치를 느끼실 거라 본다. 관객들이 극장을 찾고 만족할 수 있도록 극장을 포함해 영화 업계가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극장이 관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경험의 원천이 되는 건 결국 '콘텐츠', 즉 '영화'다. 좋은 콘텐츠, 즉 좋은 영화가 나와야 극장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윤 평론가는 "모든 물가가 오르다 보니 소비자의 소비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관람료를 낮추면 관객들이 느끼는 심리적인 부담감은 낮아질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좋은 콘텐츠, 좋은 영화를 만들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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