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 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전세'와 임대인이 보증금을 가로채는 '전세사기'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임대차 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전세를 대신 월세를 선택하는 임차인들이 늘어나는가 하면 매주 임대료를 지불하는 '주세(週貰)'도 등장했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단기임대 매물(주세)가 늘고 있다. 주세 매물은 서울 강남과 서초, 송파 등을 포함해 서울 3대 업무지구인 CBD(종로구·중구 일대), GBD(강남구·서초구 일대), YBD(영등포구 일대) 인근 지역에 나와있다. 원룸을 기준으로 강남권의 주세는 30만~50만원선이다.
주세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준금리 급등과 전세시장 침체가 이어지면서 전세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진 가운데 무리하게 대출을 일으켜 주택을 매입한 집주인들이 '공백기'에 이자 등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단기 세입자를 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장기출장이나 학원가 이용, 한달살기 등 다양한 목적으로 숙박시설을 이용하고 있던 이들에게는 단기임대 주택이 새로운 선택지가 되고 있다.
다만 주세가 전세나 월세 같은 대중적인 주택임대 형태가 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보증금을 떼일 위험은 없지만 주세를 월세로 환산하면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는 점에서 1년 이상의 장기 임대를 원하는 임차인들이 전세사기 위험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전월세 대신 주세를 선택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단기임대 중개플렛폼과 현지 공인중개사무소 등에 올라와있는 매물들을 보면 주세는 월세로 환산할 경우 월세보다 20~30% 이상 비싸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 전용면적 36.5㎡ 매물의 주세는 30만원인데 같은 면적 월세는 100만원에 나와 있다. 역삼동의 또 다른 오피스텔 전용 36.5㎡의 주세는 41만원인데 같은 면적 월세는 100만원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주세를 월세로 환산하면 훨씬 비싸기 때문에 1년 이상 장기 이용 목적의 주택을 월세 대신 주세로 선택하는 많지 않은 것 같고, 이런 이유로 전월세 임차인이 주세 임차인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주세는 보증금 수준의 목돈을 마련하지 못한 분들이 일시적으로 활용하거나 주거지를 구하기 전 서너달 동안 거주할 공간이 필요한 분들 등이 선택한다는 점에서 주세 매물은 이용 계층과 활용 목적 모두 전월세 매물과 다르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직방 빅데이터랩 함영진 랩장도 "전세사기가 사회적인 문제가 된 후 빌라 전세 거래량과 월세 거래량이 모두 줄어드는 등 빌라 임대차를 회피하는 성향이 강해진 것은 맞지만 전세사기를 피한 임차인들이 선택하기에는 시장에 나온 매물들의 가격이 너무 높은 수준"이라며 "주세 매물은 업무 출장이나 국내 단기 체류자, 학원 및 병원 이용자 등의 임시 거주 목적 임차인에게 주로 소구 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주세는 임대차 관련 제도에서도 벗어나 있다. 현행 임대차법은 임차인이 전입 신고를 했을 때만 주민등록이 된 것으로 보고 대항력을 부여한다. 또 일시 사용을 위한 임대차가 명백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주세는 보증금이 없기 때문에 보증금 등을 떼일 위험은 없지만 임대차법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주세를 급격하게 올린다고 해도 이에 대해 임차인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임대인 입장에서도 주세가 밀리는 악성 임차인 등에 대한 대처 방안이 명확하지 않다. '역전세난'이 가중되고 있는 임대차 시장 분위기가 달라진 후에도 임대인이 계속 주세를 선택할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빌라나 오피스텔 임대차 매물 중 주세가 나오고 있는데 고금리에 전세사기 우려까지 더해지며 전세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공실로 두느니 단기임대로 금융비용이라도 보전하고자 하는 집주인들이 주택을 주세로 내놓기 시작한 상황"이라며 "전월세 거래가 다시 활성화되면 이런 매물들은 다시 전월세 매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