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주재자는 '장남' 원칙?…대법 "직계비속 중 최연장자가 우선"

연합뉴스

대법원이 민법상 '제사 주재자'를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고인의 장남이 맡도록 한 종전 대법원 판례를 15년 만에 변경했다. 유족 간 합의가 없으면 가장 가까운 직계비속 중 최연장자가 맡아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11일 숨진 A씨의 유족 간 벌어진 유해 인도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제사 주재자는 공동상속인 간 협의에 의해 정하되,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적자와 서자)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 주재자로 우선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우선 "현대 사회의 제사에서 부계혈족인 남성 중심의 가계 계승 의미는 상당 부분 퇴색했다"며 "제사용 재산의 승계에서 남성 상속인과 여성 상속인을 차별하는 것은 정당화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을 우선하는 것은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헌법 11조, 개인 존엄과 양성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헌법 36조 정신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에 성별이 아닌 나이와 근친 관계를 새로운 선정 기준으로 삼았다. 다만 '최근친 연장자'가 제사 주재자로서 부적절한 사정이 있으면 법원의 판단을 받도록 했다.

또 법적·사회적 안전성을 위해 변경된 이번 법리는 판결 선고 이후 제사용 재산의 승계가 이뤄지는 경우에만 적용토록 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박종민 기자

앞서 1993년 혼인해 2명의 딸을 낳은 A씨는 2006년 다른 여성 사이에 아들을 낳았다. 이후 2017년 A씨가 사망하자 아들을 낳은 생모는 다른 유족과 합의 없이 고인의 유해를 경기도에 있는 한 추모공원 납골당에 봉안했다.

이에 배우자와 딸들은 "A씨의 유해를 돌려달라"며 생모와 추모 공원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하지만, 1·2심은 "망인의 공동상속인 사이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적서를 불문하고 장남 내지 장손자가,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장녀가 재사 주재자가 된다"는 기존 대법원 법리에 따라 이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종래 부계혈족인 남성 중심의 가계 계승을 중시한 적장자 우선의 관념에서 벗어나 헌법상 개인의 존엄 및 양성평등의 이념과 현대사회의 변화된 보편적 법의식에 합치한 것"이며 "제사 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의 범위를 종전에 비해 넓힘으로써 구체적 타당성도 보다 충족시킬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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