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애플리케이션에 얼굴을 인증하고 손바닥만한 음주측정기에 길게 숨을 불어넣었다. 10초가 지나자 계기판처럼 생긴 앱 화면에 혈중알코올농도 0%라는 결과가 나왔다. 차량은 '부르릉' 소리를 내며 정상적으로 시동이 걸렸다.
이번에는 소주 한 잔을 들이켜 마시고 다시 한 번 숨을 불어넣었다. 혈중알코올농도 수치 '0.067%'가 나와 면허 정지 수준인 0.03%를 훌쩍 넘겼다. 아무리 시동을 걸어봐도 차량은 꿈쩍하지 않았다.
9일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경기 수원시 권선구에 있는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 개발 회사 에이스큐브를 방문했다. 이 업체가 개발한 시동잠금장치 '후앤고'는 시중에서 65만 원대에 판매된다. 현재 제주, 대구 등 지역 렌트카와 고속버스에 부착돼있다.
에이스큐브 김수유 대표는 "최근에는 벤츠를 몰고 온 운전자가 장치를 부착한 뒤 인증서를 받아가기도 했다"며 "음주운전을 했던 운전자가 다시는 하지 않겠다며 받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음주운전 차량으로 인한 사망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음주운전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술을 마시면 차량 시동을 걸 수 없도록 하는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도입하자는 법률 개정안도 나왔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음주운전 사고로 최근에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어린이까지 숨지는 일까지 일어났다.
지난달 8일 대전시 둔산동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만취한 60대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인도 위에 있던 초등학생 4명을 덮쳤다. 이 사고로 배승아(9)양이 사망했고, 함께 있던 어린이 3명도 크게 다쳤다.
이 사고가 발생한 다음날인 지난달 9일에는 경기 하남시에서 배달하던 분식집 사장이 역주행하는 음주 차량에 치여 숨졌다. 같은 달 17일 울산시에서는 술에 취한 20대 남성이 차량을 몰아 횡단보도를 건너던 20대 여성을 치고 도주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음주운전은 재범률이 특히 높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7회 이상 음주운전 단속에 걸린 상습범은 983명, 2회 이상 재범자는 5만 5038명에 육박했다.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전체 음주운전 건수와 사망사고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여전히 재범률은 40%대를 웃돌고 있다. 음주운전 재범률은 2018년 51.2%, 2019년 43.7%, 2020년 45.4%, 2021년 44.5% 그리고 지난해 42.2%를 기록했다.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자 이를 예방하는 대안으로 시동잠금장치를 의무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운전자의 차량에 '음주운전 방지 장치'를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음주운전 위반자에게 음주운전 방지 장치 부착을 조건으로 운전면허를 발급하고, 장비 구매와 설치 비용은 운전자가 부담하는 내용이다.
다만 이를 현실화하기에는 법적·경제적 걸림돌이 여전하다. 대리 측정을 철저히 방지할 수 있는지, 어떤 사람에게 부착을 의무화할지, 장치 설치 및 관리 비용은 누가 지불할지, 데이터 관리 등은 어느 기관에서 맡을지 등 논란거리가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형사적 처벌로 의무 설치를 강요하기보다는 유인책으로 활용하고 있다. 벨기에·스웨덴·핀란드·프랑스 등은 시동잠금장치 부착을 전제로 운전면허 정지·취소 기간을 줄여주거나 운전면허 재발급을 허용해주는 식으로 활용한다.
전문가들은 아직 산재해있는 도입 장벽을 고려하더라도 음주운전을 예방하려면 이러한 음주운전 방지 장치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승재현 선임연구위원은 "음주운전을 했던 사람뿐 아니라 모든 차량에 시동잠금장치를 부착해야 한다"며 "법에서 음주운전을 금지하는 만큼 술을 마신 사람이 운전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적법하다"고 말했다.
이어 "시동잠금장치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국가와 자동차 회사가 일정 부분 지원하는 등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며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와 (시동잠금장치) 비용을 비교하면 후자가 더 경제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