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모씨는 평소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중증장애인입니다. 다리를 끌며 간신히 움직일 수는 있지만, 걷기는 힘든 정도의 장애를 지녔죠. 그래서 평소 그는 광주나 부산, 인천에서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유독 서울에서만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시와 서울시설공단이 황씨의 장애가 콜택시를 이용할 만큼 중증은 아니라며 이용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에 황씨는 서울시와 공단을 상대로 '택시 이용을 허가하는 구제조치를 하고 500만원을 배상하라'는 취지의 장애인 차별 중지 청구소송을 냈습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습니다. 서울시가 황씨의 장애인콜택시 이용을 거부한 것은 위법하지만, 공무원의 고의적 과실이 아니며 차별행위도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황씨는 1심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첫 변론 기일 때에는 다소 미온적인 모습이었다가 황씨를 직접 본 뒤로는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항소심 선고. 재판부는 "이용 신청을 거부한 것은 위법하지만 차별은 아니었다"는 1심의 판결을 뒤집을까요, 아니면 이번에도 서울시의 손을 들어줄까요?
이용 거부는 위법…하지만 서울시가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서울시와 공단이 황씨의 장애인콜택시 이용 신청을 거부한 것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정한 '차별행위'인지 여부입니다.
서울시는 황씨의 장애가 콜택시를 이용할 만큼 심하지 않다고 해석했습니다. 이유인즉슨 황씨는 '종합 장애 정도가 심한 중증장애인'이면서 '지체(상체)장애,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지만, '하체장애는 심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황씨에 대해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에 따라 보행상 장애가 심한 장애는 아니라고 판단했고, 콜택시를 이용할 수 없다고 본 겁니다.
1심 재판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울시의 해석이 잘못됐다고 보고, 황씨를 보행상 장애인으로서 버스·지하철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인정했습니다.
2022.12.19 서울중앙지법 제26민사부 1심 판결 中 |
교통약자법의 입법취지를 고려하여 대중교통 이용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이 특별교통수단 이용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그 이용대상자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 …또한 보행상 장애인이면서 종합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자 버스·지하철 등의 이용이 어려운 사람은 장애인콜택시와 같은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이동이 곤란하므로,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특별교통수단을 제공하는 것은 교통약자법의 입법취지에도 부합한다. …따라서 원고는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에서 요구하는 요건을 모두 갖추어 특별교통수단 이용대상자에 해당하므로, 피고 서울시설공단이 원고의 장애인콜택시 이용신청을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 |
그렇다면 1심 재판부는 왜 서울시의 손을 들어준 것일까요? 원고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차별을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서울시의 위법한 판단이 이 법이 정한 차별은 아니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2022.12.19 서울중앙지법 제26민사부 1심 판결 中 |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하는 차별금지 대상은 모든 이동 및 교통수단에 대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법 제3조에서 정의하고 있는 '이동 및 교통수단 등'에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교통수단은 버스, 도시철도차량, 여객운송 철도차량, 비행기, 선박, 기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운송수단으로… (중략)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교통행정기관(서울시)이 장애인의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의 이용에 필요한 '정당한 편의제공'의 적용대상이나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는 한, 교통행정기관의 특별교통수단 미제공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
한마디로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제공 의무는 교통약자법에 규정돼 있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이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으므로 특별교통수단 미제공은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겁니다.
아울러 서울시 공무원이 고의로 규칙 해석을 잘못해 황씨의 요청을 거부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서울시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 1심 재판부 판결의 요지입니다.
2022.12.19 서울중앙지법 제26민사부 1심 판결 中 |
피고가 원고의 장애인콜택시 이용신청을 거부한 것이 보통 일반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하여 볼 때 객관적 주의의무를 결여하여 그 행정 처분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인정될 정도에 이른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중략) |
휠체어 탄 원고 모습에…달라진 항소심 재판부
황씨와 서울시는 결국 항소심 법정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지난 3월 9일 첫 변론 때 재판부는 "기일을 여유있게 드릴 테니 변경 신청하지 마시고요. 다음 기일에 이 사건을 종결하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관계 다툼이 아닌 법리 싸움이니, 시간 끌지 않고 빨리 사건을 끝내겠다는 의미였죠.
다소 냉랭해 보이기까지 했던 재판부를 움직인 것은 마지막 변론 기일에 직접 등장한 황씨였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입정한 황씨. 원고석까지 심하게 절뚝거리며 가까스로 착석했습니다. 민사소송의 경우 대부분 원고와 피고의 대리인들만 재판에 참석합니다. 당사자가 꼭 출석할 의무는 없습니다.
2023.4.27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 변론 中 |
재판부: 원고 본인이 나왔으니까 걷는 것을 좀 보여주시죠. 평소 휠체어에 앉아서 생활하시나요? (원고인 황씨가 아주 천천히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남) 재판부: 아이고, 힘드시겠네. 원고: 병원에서는 걷지 마라고 합니다. 재판부: 네, 그 정도만 (보여주시면 된다). 앉으시고요. 근데 상체 장애가 좀 있으시고 하체에도 있으신 것 같은데, 장애 판정을 보면 하체가 심하지 않고 상체가 심해서 종합적으로 심하다, 이렇게 나왔거든요. 그 부분이 얼핏 납득이 안 가네요. 원고: 저도 (장애 판정이) 납득 가지 않습니다. 재판부: 상지는 심하고 하체는 심하지 않고. 원고: 두개가 바뀐 거예요. 원래 바뀌는 것이 맞는데 판정을 안 바꿔줘요. 목과 척수 때문에 못 걷게 된 거예요. 신경 전달이 뇌까지 가지 않기 때문에, 목에 장애가 있다고 보고 상체 (중증 장애)로 나온 것 같아요. |
뇌성마비와 언어장애가 있는 황씨의 말은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어눌했습니다. 걷지도 못하고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는 황씨를 보고 있으면, 도대체 그가 왜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없었던 것인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재판부의 반응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럼에도 서울시와 시설공단은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답변만 되풀이했습니다.
2023.4.27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 변론 中 |
피고(서울시): 기존에 있던 제도의 취지를 고려해서 운용해 왔습니다. 현재로서는 한정된 예산과 자원이 있기 때문에요. 당사자 측과 서울시 담당 부서와 얘기해보니, 만약 원고가 해석하듯 확대해석 해버리면 시설 제공에 한계가 있어서, 갑자기 이용 대상 늘어나서, 기존에 이용하시던 분들이 이용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에 많이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재판부께서는 현실적 문제를 고려해서 결정해 주시기 바라고, 해석의 문제도 있지만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피고(시설공단): 물론 장애인 모두에 대해 특별교통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존 이용 대상자들도 이용 대기시간이 한시간에서 90분 이상 걸리는 실정입니다. 마냥 이용 대상을 늘리는 것이, 현재 시급하게 이용해야 하는 장애인들의 사정에 에 비춰보더라도 바람직한지 의문입니다. |
부산과 광주, 인천 등 다른 곳에서는 장애인콜택시를 아무 문제 없이 이용해 오다가 서울에 와서 갑자기 이용할 수 없게 됐을 때 황씨는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요. 다른 장애인들이 콜택시를 이용해야 하니 기존에 있는 법이 개정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는 서울시의 답변은 또 황씨를 얼마나 실망시켰을까요.
재판부는 공단이 참고한 콜택시 이용대상 이용기준이 조례에 근거한 것인지 규칙에 근거한 것인지를 거듭 물었습니다. 서울시가 법령에 근거했던 건지,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조례에 근거했던 것인지에 따라 재판부의 결론도 달라질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현행법상 장애인 교통수단에 콜택시가 들어가는지 여부를 놓고 법정에서 법리적 다툼이 벌어지는 동안 황씨는 현실 속 길거리에서 사투를 벌여야 한다는 겁니다.
서울시와 시설공단 측이 항변하는 동안에도 원고석의 황씨는 몸을 제대로 가누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습니다. 이 상황을 보고 있자니, 인간 합리성의 산물이라는 법에 대해 "약자들을 갈아 만들어 강자들이 지배한다"고 한 어느 아일랜드 극작가의 일침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