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OTT의 확장이 아니라도 배우 한 사람이 TV 방송 시스템 아래에서 시즌제 드라마를 잇따라 성공시키기란 대단히 어렵다. 최근 사례를 찾아 보자면 같은 SBS 금토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정도가 전부다. 이제 갓 40대에 접어든 이제훈은 성공적으로 '모범택시' 시리즈를 이끌었다. 그러나 인터뷰 내내 일말의 우쭐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범택시2'는 오히려 톤을 가볍게 바꾸면서 이제훈의 매력이 더욱 살아났다. 그는 더 능청스럽고 통쾌한 '부캐들'을 통해 시청자들의 답답함을 풀어냈다. 다소 과장되거나 우스울 수도 있었지만 노련한 이제훈의 완급 조절이 온갖 '부캐들'을 매력적으로 구현해냈다.
정작 이제훈 본인은 '너무 많이 끌어다 써서 이제 밑천이 드러났다'는 고민 중이다. 지금까지 이제훈 필모그래피를 되돌아보면 차분하고 영리한 모습과 다르게 그는 쉼 없이 격정적으로 스스로를 몰아쳤다. '파수꾼' '박열' '모범택시'까지 무엇 하나 쉬운 작품이 없었다. 언제나 듣는 귀가 열려 있고, 자신의 부족함까지도 기꺼이 인정하려는 그의 마음가짐이 어쩌면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다음은 이제훈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A 심판과 공권력이 미치는 영향력에 있어서, 또 그것이 판결로 이어졌을 때 전부 동의하느냐를 이야기해봤을 때 그렇지 않다는 의견들이 대다수더라.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건 '모범택시'와 같은 사적 복수가 아니라 현실에서 법의 심판과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인 것 같다. 그러려면 우리가 더욱더 많은 관심을 갖고, 의견을 내야 되지 않을까.
Q 시즌1과 달리 시즌2에 중점을 두고 갔던 지점은
A 시즌1에서는 사적 복수가 옳은 것이냐에 대한 가치관 혼돈과 갈등으로 이야기가 계속 전개됐다. 그러다 보니 많이 무겁고 강한 색채가 있었는데 시즌2는 선택과 집중을 좀 하자라는 판단을 하게 됐다. 피해자들을 우리가 보호하고 이들에 대한 억울함을 풀어주자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많은 에피소드들을 풀어가려고 했었던 것 같다. 도기는 사건을 해결하면서 좀 더 밝고, 리드미컬하고 재밌게 풀어보자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혼자 끌고 가기보다는 우수한 무지개 운수 사람들과 앙상블을 이뤄서 신명나게 이야기를 가져갔다.
Q 클럽 블랙썬부터 사이비 종교 이야기까지,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A 블랙썬의 실제 사건(버닝썬 사건)은 아직 결론이 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클럽 안에서의 위험 요소들, 약물과 마약에 대한 부분들까지 사실 더 많은 악행들이 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민할 수 있는 부분임에도 드라마적 소재로 가져와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게 오히려 좋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내버려 두지 말고 계속 경각심을 가져야 된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고 우리에게 어떤 피해를 줄 지 모르지 않나. 해결이 되고 처벌 받은 것에서 끝이 아니라 계속 양산된다는 답답함과 화남이 저는 있다. 그래서 이걸 사람들이 기억하게 된다면 그게 저에게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단 생각이다.
A 시즌3 이야기는 이전부터 있었다. 미드(미국 드라마)나 일드(일본 드라마)처럼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시즌제 작품이 되면 너무 좋지 않을까 기분 좋은 상상을 하게 된다. 현재 진행형에 있는 어떤 사건이라고 한다면 코인에 대한 이야기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과도기인 동시에 그것을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탐욕이 있다. 피해자도 있고 누리는 사람도 있을 거다. 또 한 번 그런 주제를 다뤄보면 깊게 생각할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외에도 많다. 작가님, 제작진 혹은 무지개 운수 사람들과 이야기를 공유하면 좋겠다.
Q 본인 스스로는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정의로운 사람인지
A 그런 부분은 학창 시절에 되게 강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얘기하면 제가 부끄러울 수도 있는데 배우라는 일을 하게 되면서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식의 즉각적 반응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혹시나 이것이 부당하고 안 좋은 일임에도 바로 나서서 의견을 피력하는 것에 있어 조심스러워지는부분이 있다. 그게 참 어려운 지점이다. 그래서 어떻게 잘 표현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또 고민을 하게 된다. 배우로서 제가 표현을 한다면 작품으로 의견을 보여주는 것도 좋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다. 그러면 제가 어떤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Q 수많은 '부캐'(부캐릭터)도 인상적이었다. 배우로서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겠다
A 어떤 '부캐'가 나오는지는 전혀 사전에 논의된 바가 없었다. 작가님이 써주시는 대본을 보고 나서야 내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항상 작품을 받아서 그 인물이 어떻게 태어났고, 주변을 어떻게 구성했고, 직업과 성격은 어떤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수많은 질문을 통해서 인물을 완성해가는 메소드적인 접근이었다면 '모범택시'는 조금 더 인물의 외형과 세련된 표현을 고민했던 거 같다. '재밌게 놀아보자'는 측면의 접근이 컸다. 저와는 다른 표현을 해서 스스로 놀랐던 순간도 많고, 수많은 캐릭터들의 나열을 통해 이제훈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짧은 순간에 남길 수 있어서 너무 힘이 났다. 그렇게 즐기다 보니 배우로서의 제 밑천도 좀 많이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한편으로는 더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함을 느꼈다.
A 제작자분들이 저에게 제안을 주시거나 원하면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제 의견은 크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작품을 만들 때 함께하는 사람들이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의견이 모아진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저는 제 연기에 있어서도 많은 분들이 이야기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내 영역이고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가 아니라, 제가 놓치거나 깨닫지 못하는 것들도 많다. 그걸 누군가 저에게 깨우쳐줬으면 좋겠다. 제가 그런 의견을 수용하는데 매우 열려 있고, 그래서 상대방도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모범택시2'의 정체성 그 자체인, 가장 인상적인 대사를 꼽자면
A 김도기가 '기억해야 되찾을 수 있는 게 있다'고 말하는 대사. 그게 '모범택시2'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잊을 수 있지만 피해자와 당사자들은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거다. 그런 걸 우리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계속 관심을 갖고 또 다시 이런 아픔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가 함께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