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의 美 '핵무기 잠수함' 전개…군사·정치적 함의는?

2017년 10월 부산 해군작전기지로 들어오는 미 해군의 오하이오급 SSGN 미시건함. 미 국방부 영상정보시스템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발표된 '워싱턴 선언'에는 "향후 예정된 미국 탄도미사일 탑재 원자력 잠수함의 한국 기항(upcoming visit of a US nuclear ballistic missile submarine to the ROK)"이라는 내용을 포함, 미국 전략자산이 더 자주 전개될 것이라고 언급됐다.

40년 남짓한 기간 동안 한국에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한 번도 오지 않은 탄도미사일 탑재 원자력 잠수함(SSBN)이 다시금 한반도에 오게 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군사적인 부분만 따지자면 효용성은 고개를 갸웃하게 하지만, 정치적으로 함의를 보면 꽤 크다.

2차 보복 능력의 결정체인 SSBN…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모두 보유

SSBN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해 운용되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 다른 말로는 핵잠수함(SSN)이다. '원자로'를 통해 움직이는 원자력 잠수함(핵잠수함) 중에는 핵무기가 없는 잠수함이 더 많지만, SSBN에는 보통 핵무기를 탑재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이른바 P5라고 불리는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5개국 모두 SSBN과 핵 탑재 SLBM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잠수함의 가치는 넓은 바다에 잠수함이 핵무기를 탑재한 상태로 숨어 있다가, 본국이 적국의 선제 핵공격으로 타격을 입더라도 핵보복이 가능한 2차 보복 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을 갖추는 데 있다. 땅에 있는 핵폭격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경우 이론상 적국이 선제공격으로 파괴할 수 있지만, 잠수함은 위치를 모르니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SSBN과 핵 탑재 SLBM의 존재는 상대를 핵으로 파멸시킬 능력이 충분할수록 역설적으로 아무도 서로를 핵으로 공격하지 못한다는 상호확증파괴(MAD)로 이어졌고, 현재까지 핵무기를 동원한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미국은 기존의 오하이오급 SSBN 가운데 일부에서 트라이던트 SLBM을 제거하고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장착, SSGN이라고 이름붙게 됐다.

SSGN은 핵무기는 필요없지만 여전히 잠수함이 전쟁에 동원될 필요는 있을 때 은밀히 기동, 순항미사일의 정밀유도능력으로 목표를 정확히 타격할 때 쓰인다. 2023년 현재 토마호크의 원형공산오차(CEP)는 1m 정도로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 표적 반경 1m 이내에 명중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 탈냉전…40년간 한국 안 온 SSBN

4월 18일 괌에 기항하는 미 해군의 오하이오급 SSBN 메인함. 미 국방부 영상정보시스템

한반도에는 미국의 핵무기가 존재했다. 물론 과거형이다. 1991년 11월 노태우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과 함께 미군이 배치했던 전술핵무기는 한반도에서 모두 사라졌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1980년대 초반 이후로 미국의 SSBN이 남한에 오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SSBN이 오지 않은 지 약 40년이 흐른 셈이다.

그같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부산 해군작전기지 등지에 왔던 오하이오급 원자력 잠수함은 모두 SSGN이었다. 이유는 여럿 있는데 먼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도 명시된 '한반도 비핵화'를 지키기 위해서다. 물론 12년 뒤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한반도의 '비핵화' 상태는 깨지긴 했다. 그래도 미국은 SSBN을 한국에 보내지 않았다.

현실적인 이유도 함께 작용했다. 냉전 당시 최대의 적이었던 러시아는 국민들 끼니를 걱정하는 신세가 됐다. 중국은 2000년대에야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 성장하고 있었다. 1990년 실전배치된 트라이던트 2 D5 SLBM의 사거리는 1만 2천킬로미터 이상이다. 태평양에서 날아오든 필리핀해에서 날아오든 30분이 걸리느냐, 1시간이 걸리느냐 정도의 차이뿐이었으니 한국은 둘째치고 일본에조차 SSBN을 굳이 전개할 실용적 이유가 없었다.

한국에 SSBN이 전개되면 이런 현 상황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는 셈이다. 마침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명분으로 하되 2010년대 급부상해 서태평양의 패권을 위협하려 드는 중국까지 견제하는 여러 방법들을 추진하고 있다. SSBN 전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빌미로 미국 핵무기의 역내 전개를 정당화할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된 셈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그렇다.

군사적 효용성은 '글쎄', 국제정치적 효용성은? 의미 작지는 않아

2016년 8월 미 해군의 오하이오급 SSBN 메릴랜드함에서 발사되는 트라이던트 2 D5 SLBM. 미 국방부 영상정보시스템


문제는 SSBN의 한국 전개가 군사적으로 효용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다만 정치적인 의미는 작지 않다.

앞서 언급한 실제 타격 능력부터 보면, 트라이던트 2 D5 SLBM의 사거리는 1만 2천킬로미터 이상이니 괌이나 하와이는 물론 미국 본토 서부에 가까운 앞바다에서도 평양을 충분히 타격할 수 있다. 시간이 몇 분 걸리느냐 정도 차이만 있을 뿐이다.

북한대학원대 김동엽 교수(예비역 해군중령)는 "트라이던트 2 미사일은 ICBM급 사거리를 갖고 있어서 목표물과 일정 정도 이격되어야 효과적이다"며 "제원상 최소 250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야 운용 가능하다고들 하는데 한반도 인근에 상시 배치하면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형인 트라이던트 1 C4도 사거리가 7천킬로미터 이상에 달한다.

무력시위, 다시 말해 '억제(deterrence)'에 집중해서 보더라도 효과가 애매하다. 무력시위는 '보여줘야' 효과가 있다. 국제정치학에선 억제의 3요소를 △의사전달(communication, 금지행위와 위협 존재를 상대국에 명확히 알림) △역량(capability, 위협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능력) △신뢰성(credibility, 위협을 실행할 수 있다는 분명한 의지와 확신) 으로 구성한다.

그런데 어차피 항공모함은 숨길래야 숨길 수도 없지만 잠수함은 '보여주는' 쪽이 아니라 반대로 '숨어다니는' 쪽에 집중하는 무기체계다. 그러므로 무력시위 측면에서 효과가 애매하다. 때문에 이번에 발표된 SSBN 전개가 정말로 군사적 효용성이 있어서이기 때문인지, 또는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을 잠재우기 위한 미국의 방책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또는 오히려 항공모함보다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공군력이 없는 수준이나 마찬가지인 북한을 상대로 항공모함은 '과잉 화력'에 가까운데, 잠수함은 마음대로 숨었다가 나왔다가 할 수 있으므로 수위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는 논리다. 물론 항공모함은 재래식 전력이고 SSBN은 핵전력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북한의 오판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손원일함의 초대 함장을 지냈던 최일 잠수함연구소장(퇴역 해군대령)은 "원문의 표현(정기적 가시성 regular visibility)을 고려할 때 '방문(visit)'이라 함은 '전개(deployment)'라기보다 '한국 입항'으로 해석된다"며 SSBN이 부산 해군작전기지 등지에 들어올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SSBN은 일반적으로 타국을 방문하는 자산이 아니며 위치도 공개하지 않고, 외국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례는 없다"며 "핵무기를 한반도 영토에 배치하지 않으면서도 핵우산을 현시할 수 있는 미국의 전력은 SSBN이 유일하며, 한국 방문은 한국 방어에 대한 미국의 공약을 분명히 하는 상징이 된다"고 덧붙였다.

3월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오커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미-영-호주 3국 정상. 미 국방부 영상정보시스템

문제는 국제정치적 함의다. 중국과 가까운 한국에 SSBN을 전개하는 일은 미국의 진짜 의도와는 또 다르게 동아시아의 긴장을 고조시킬 우려가 있다. 가까운 산둥반도와 블라디보스톡에는 각각 중러 해군의 잠수함 기지가 위치한다. 현재도 동해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미일·북중러 잠수함들의 목숨을 건 추격전, 또는 '눈치 게임'이 더 심해질 수 있다.

그러잖아도 미국은 2030년대로 예정된 로스앤젤레스급 SSN의 대거 퇴역을 앞두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데 골머리를 썩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1년에 나온 방법이 바로 영국과 손잡고 호주에 핵잠수함을 지원하는 오커스(AUKUS)다.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조재욱 교수는 지난 3월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의 국제정치적 접근과 가능성 탐색: 미중 패권경쟁 구조 속의 한국외교 전략 한계를 중심으로' 논문에서 "미 해군의 잠수함 공백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되는 시점과 호주에서 핵잠수함이 실전배치되는 시점은 거의 일치한다"며 "미 해군은 자신들의 잠수함 전력 공백을 호주에서 건조된 핵잠수함으로 보충함으로써 최소한 중국과 균형을 유지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한미일·북중러에 더해 호주까지 끌어들인 셈이다. 물론 여기에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고 있는데, SSBN을 전개한다고 해서 그냥 보고만 있을 리는 없다.

2월 23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킹스베이 해군기지에서 SSBN 웨스트 버지니아함을 방문한 한미 확장억제수단 운용연습(DSC TTX) 대표단. 국방부 제공

게다가 오하이오급 SSBN은 14척밖에 없는데 당연히 14척 전체를 전략초계에 투입할 수는 없다. 일부는 정비를 하고 일부는 대기, 일부는 초계에 투입되는데 미국은 전 세계를 작전지역으로 하므로 동아시아에 투입할 수 있는 SSBN의 숫자는 한정적이며, 가능하더라도 비용도 많이 든다.

이렇게 되면 군사적 효용성이 애매한 무기체계에 우리의 방위비 분담금이 쓰이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는 과거 트럼프 행정부가 '준비태세(readiness)' 항목을 분담금에 신설해 전략자산의 배치 비용을 우리에게 부담시키려 했던 시도와 같은 맥락이다.

김동엽 교수는 "오히려 한반도와 동북아의 긴장을 더 고조시킬 수 있고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협력과 군사행동에 명분과 정당성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며 "어차피 미국이나 일본은 억제 또는 북핵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적당한 긴장 고조를 더 바라는 바"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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