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북적이는 집에서 사랑 넘치는 8남매…"서로 가장 좋은 친구" ②평균 출산율 3명인 교회…"아이 함께 키워준다는 믿음 덕분" ③다섯 남자아이 입양한 부부…6형제가 만드는 행복의 모양 ④부모는 슈퍼맨이 아니야…'같이 육아'로 아빠도 배운다 ⑤"내 자식 같아서" 온정 전하는 아버지들…"돌봄친화 사회로 이어져야" ⑥신생아 '1만 명' 만난 베테랑 의사가 말하는 '산부인과 의사생활' ⑦"나부터 먼저" 대한민국 1호 민간 출산전도사가 된 회장님 (계속) |
"남자한테 참 좋은데 진짜 좋은데…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광고 하나로 한때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얻은 기업인이 있다. 바로 김영식 전 천호식품 회장이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지금, 김 회장은 자신의 이름을 딴 민간 출산지원 재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사비를 들여 '출산 전도사'로서 다자녀 출생을 적극 권장하며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 애쓰고 있다. 온 국민에게 익숙한 그의 과거와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는' 묘한 연관성이다.
우연히 읽은 신문기사가 연 인생 2막…회장에서 출산전도사로
시작은 평소처럼 펼친 신문에 실린 한 기사였다. 사업 관계로 서울과 부산을 바쁘게 오가던 김영식 이사장은 그날 부산으로 가는 길에 집어 든 신문에서 저출생 위기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김 이사장은 "기사에서 지금의 저출생 추세가 계속되면 대한민국이란 국가 자체가 소멸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김 이사장은 회장으로 있던 식품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2009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출산지원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첫 아이를 낳은 직원에게 100만 원, 둘째는 200만 원의 출산축하금을 지급했다. 셋째 아이를 낳으면 무려 1220만 원을 2년에 걸쳐 지원했다.
김 이사장은 "저출생의 심각성을 깨닫고 일단 '나부터 먼저 해보자. 그럼 다른 사람들도 따라오겠지'라는 생각으로 내 회사에서 먼저 시작했다"며 "직원들 반응이 너무 좋길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지원을 넓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는 외부에서 받은 강의료와 저서 수입을 모아 세 자녀 가정에 출산축하금 200만 원을 지급했다. 돈이 생길 때마다 50명씩 지원하다 보니 어느새 사비로 지원한 출산축하금만 9억 원을 훌쩍 넘었다.
2017년 기업 회장직에서 내려온 그는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에서 '김영식세자녀출산지원재단'을 만들어 지금까지 운영 중이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개인이 재단을 만들어서 출산장려사업을 하는 건 나밖에 없다"며 "내가 먼저 하면 다른 사람이 따라하겠지 생각해서 했는데 아직 비슷한 민간단체는 없지만 그래도 뜻을 함께하며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참 감사하다"고 웃었다.
"셋째 낳으면 200만원 드려요" 대한민국 1호 민간 출산지원 재단
'김영식세자녀출산지원재단'의 중점 사업은 김 이사장이 회장 시절부터 이어온 '셋째 아이 출산지원축하금 프로젝트'다. 셋째 아이 출산한 가정의 신청을 받아 1년에 2차례 50가정에 축하금 200만 원을 지급한다. 재단을 만든 뒤 5년 동안 599명에게 11억 7700만 원이 전달됐다.
김 이사장은 "한번은 사무실로 전화해 '당연히 줘야하는 거 아니냐. 빨리 돈을 보내라'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며 "그래도 축하금을 받아서 아이들과 처음으로 제주도 여행을 간다거나, 걱정했던 아이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며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런 글을 보면 참 뿌듯하다"고 말했다.
수많은 사연 중에도 강연을 했던 한 병원의 간호사로부터 갑작스럽게 연락받은 일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는 "계획에 없던 셋째를 임신한 분이 수술을 고민하는데 내가 했던 '아이는 생기는 대로 낳아라'란 말이 자꾸 맴돌았다고 하더라"며 "결국 수술대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며, 남편과 울면서 나에게 연락했다고 하더라"고 사연을 전했다.
그는 '김영식세자녀출산지원재단'을 후원자들과 다자녀 가정을 연결하는 '플랫폼'이라고 설명한다. 재단에 들어오는 후원금을 셋째 아이 출산 축하금으로 각 가정에 지급할 때 후원자의 이름을 반드시 밝히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그는 "크든 작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눈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며 "자신의 후원금이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 또 받는 사람도 누가 도움을 준 건지 알아야 베푸는 문화가 더 퍼져나가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축하금 지원을 받은 후 감사를 전하며 소액이지만 재단에 정기 후원을 시작한 가정도 있다. 재단 홈페이지에는 수혜자들이 후원자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감사를 전하는 따뜻한 글이 가득하다.
개인차원에서 다양한 방식 시도하지만…"정부서 획기적인 대책 내놔야"
김영식 이사장은 동네에서는 '행운의 아저씨'로 불린다. 평소 매주 복권을 수백 장씩 사서 만나는 사람에 나눠주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은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김 이사장은 "동네 공원에 운동하러 가서도 아기들을 데리고 나온 어머니들을 보면 '아주머니 아기 키우기 힘드시죠'라고 말 건네면서 복권을 한 장씩 선물한다"며 "정말 1등 되면 어떡하냐고 물으면 우리 재단에 10%만 꼭 좀 후원해달라고 부탁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어 "복권 한 장에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내가 더 기쁘다"며 "아이가 셋인 가족들에게는 응원의 마음을 담아 두 장을 선물한다"고 말했다.
재단은 '들싱나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들어갈 땐 싱글, 나올 땐 커플'의 줄임말인 '들싱나커'는 25세~39세 미혼남녀를 초대해 저녁 식사를 하는 일종의 단체 소개팅 행사다. 지난해 10월까지 5차례 진행됐다.
그는 "청년들이 일단 만나야 결혼과 출산까지 이어지겠다는 생각으로 청년들의 만남을 적극 응원하고자 기획한 프로젝트"라며 "여기서 만나 결혼까지 골인하면 주례도 해주고 신혼여행비도 지원할 계획인데 아직까진 한 커플도 없다"고 아쉬움이 담긴 웃음을 터뜨렸다.
이외에도 재단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 출장교육을 하는 '미래출산세대 저출산극복교육 프로젝트'와 출산친화기업을 선정해 시상하는 '출산친화기업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민간차원에서 다양한 방식의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으로 김 이사장은 정부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예전과는 다른 상황이고, 다른 세대"라며 "청년세대를 설득하기 위해선 정부 차원에서의 실질적이고도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현재 재단에서 세 자녀 가정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축하금을 주고 있지만 돈 몇 백 만원 준다고 해서 아이 낳을 생각이 없던 사람이 아이를 낳진 않는다"며 "정부에서 결혼하고 싶지만 상황이 안 되는 젊은 청년들을 위해 무상으로 임대아파트를 지원해 주거를 책임지거나, 교통비나 세금 감면 등 파격적인 혜택을 줘야 청년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그의 가장 큰 목표는 '대한민국의 출산율을 조금이라도 올리는 것'이다. 그는 "여기저기서 아기 울음소리가 많이 들리는 것이 바로 축복이고, 우리에겐 희망"이라며 "개인으로서 지금 하는 일들이 큰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희망의 씨앗을 심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