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전세 피해 '하반기 정점'인데…정부, 더 이상 '뒷북대응' 안된다

尹대통령 지시로 머리 맞댔지만 9개월간 실효성있는 정책 못 내놓던 정부
사망자 발생하고 대통령 '경매중단' 지시 나오자 사흘만에 우선매수권 발표
"전세사기 피해 올 하반기 피크"라는 자가진단 맞춰 늦지 않게 대응책 마련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0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목련마을 주공1단지 아파트 중탑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제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서민들의 소중한 보증금을 노리는 전세사기까지 기승을 부려 어려운 서민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깡통 전세가 우려되는 지역을 선별해서 선제적으로 관리해 나가겠습니다."
 
"주거안정과 주거복지는 민생안정의 핵심입니다. 정부는 끊어진 주거의 기회 사다리를 복원하고 촘촘하고 든든한 주거 안전망을 구축하겠습니다."
 
지난해 7월 20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 성남의 한 주공아파트 단지를 직접 방문한 자리에서 한 발언이다.
 
이로부터 40여일 후인 9월 1일, 관계부처 합동 '전세사기 피해 방지방안' 발표에 나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사기 범죄를 근절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피해자들의 시간은 그 후로 7개월 넘게 멈춰 섰다.
 
선순위 채권자들이 대출금을 찾아가겠다며 살고 있는 집을 경매에 넘길 때도, 울며 겨자 먹기로 살던 집을 낙찰 받아보려 했지만 '경매꾼'들에게 빼앗길 때도, 새로 살 집을 찾기 위해 추가 대출을 알아봤지만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을 때도, 그 어느 때도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택시장 경색으로 인해 집값이 하락할 경우 세입자들, 특히 집값과 전세가격이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는 집에 전세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부동산 정책의 컨트롤타워이자 전문가들의 집합체인 국토부가 모를 리가 없다.
 
연합뉴스

하지만 빌라왕 출현에 대한 우려가 보도될 때도, 박근혜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발생했던 사기행각이 똑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될 때도, 피해자들이 도저히 살기 힘들다며 무리지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할 때까지도 제대로 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첫 범정부 대책 발표 이후 여러 차례 전세사기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지원책이 제시됐지만 피해자들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세보증금을 되찾는 일이고, 가장 시급한 것은 돈 한 푼 돌려받지 못한 채 살던 집에서 내쫓기는 일을 막는 것인데 이들과 관련한 대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안심전세 앱 출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전세가율 하향, 보험 가입의무 강화, 강점평가제도 악용 금지, 전세사기 피해 사실확인서 발급, 임대인의 임대차·납세증명 의무 제공, 임차주택 낙찰시 무주택 기간 유지 등 좋은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피해자들의 전세금을 돌려주거나 내쫓김을 막아줄 대책은 아니었다.
 
그 사이 인천시 미추홀구에서만 20~30대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생활고를 비관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정부는 그제야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6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전세사기 피해 주택 경매 중단을 지시했고, 국토부와 법무부, 금융위원회 등은 하루만에 범부처TF를 가동해 경매 중단과 피해자에 대한 우선매수권 부여 등의 방안을 20일 당정협의에서 발표했다.
 
지난해 7월 윤 대통령의 첫 지시로 각급 회의를 통해 여러 차례 머리를 맞댔음에도 4월 중순까지 9개월 가까이 합의점을 도출해내지 못하던 관계부처들이 피해자들의 연이은 사망과 대통령의 지시 한 마디에 불과 3일 만에 방안을 만들어낸 것이다.
 
당정협의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현재 우리 제도상 가능한 게 무엇인지, 제도가 안 된다면 제도를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어디까지가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지 이런 점들에 대해서 저희들이 원점에서부터 검토를 하겠다"는 원 장관의 발언은, 지난 9개월 동안은 무엇을 하다가 지금에서야 원점에서 검토를 하느냐는 반문을 피하기 어렵다.
 
경매 중단과 우선매수권 부여,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대리 낙찰 후 공공임대제공 등 피해자들이 쫓겨나지 않을 수 있는 발판은 마련되게 됐다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야당은 여전히 공공이 임차인의 전세보증금 채권을 인수해 피해자들에게 보증금을 우선 지원해주자는 법안의 처리를 주장하며 의견 차를 보이고 있고, 피해자들은 살던 집에서 강제로 나오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은 좋지만 보증금을 되찾지 못하면 결국 지금 집에 갇혀 있게 되는 것이라며 구제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 장관은 전세사기가 올해 하반기까지 피크(절정)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 큰 위기가 오지 않도록, 원점부터 제대로 검토하고 사회적인 합의를 잘 이끌어낼 수 있는 대응책이 더는 늦지 않게 도출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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