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연맹(KOVO)은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스탠포드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여자부 아시아 쿼터 드래프트를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대부분의 구단들은 아포짓 스파이커, 아웃사이드 히터 등 날개 공격수를 지명한 가운데 1순위 지명권을 얻은 IBK기업은행은 유일하게 세터를 선택했다.
IBK기업은행이 호명한 선수는 태국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는 폰푼 게드파르드(30·173cm)다. 그는 2009-2010시즌 자국 리그에 속한 나콘 논타부리에서 프로로 데뷔했고 일본, 폴란드, 루마니아 등 해외 리그를 경험했다.
직전 2022-2023시즌에는 루마니아 리그 라피드 부쿠레슈티에서 이다영과 한솥밥을 먹었다. 이다영은 지난 2021년 쌍둥이 자매 이재영과 함께 학교 폭력 가해자로 지목돼 V리그에서 퇴출된 선수다.
폰푼은 2022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한국과 경기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당시 낮고 빠른 토스를 통해 태국의 세트 스코어 3 대 0 승리를 이끌었다. 이런 그는 이번 드래프트에 지원해 일찌감치 최대어로 꼽혔다.
현역 시절 명세터로 이름을 날린 IBK기업은행 김호철 감독이 1순위 지명권을 받자 망설임 없이 지목했을 정도다. 김 감독은 폰푼을 지명한 뒤 "우리 팀이 추구하는 빠른 패턴의 공격을 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다"면서 "국제 대회에서 뛰는 걸 많이 봤는데 우리 팀에 적합한 선수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폰푼은 빡빡한 대표팀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소속팀 합류 시기가 늦어질 것으로 보여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는 9월에 열릴 2023 항저우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 일정을 마치고 10월부터 소속팀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감독은 "폰푼은 자기 나름대로 하고자 하는 배구가 있기 때문에 많이 건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면서 "일단 맡겨보고 고칠 부분이 있으면 조언을 해줄 생각"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어 "일단 폰푼이 합류하기 전까지는 (김)하경이가 전체적으로 한다"고 덧붙였다.
김하경은 2021년 11월 주전 세터였던 조송화가 무단 이탈 및 항명 논란을 일으키고 팀을 떠난 뒤 갑작스레 빈자리를 메워야 했다. 당시 지휘봉을 잡고 있던 서남원 전 감독이 내홍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새롭게 부임한 김 감독의 지도 아래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2021-2022시즌 세트 3위(세트당 9.94개), 2022-2023시즌 세트 3위(세트당 10.24개)로 활약했다.
다음 시즌에도 김하경은 주전 자리를 꿰찰 것으로 보였지만 폰푼의 합류로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이처럼 아시아 쿼터 도입으로 지난 시즌까지 주전으로 활약한 국내 선수들은 더 이상 입지를 확신할 수 없게 됐다.
이는 다가올 신인 드래프트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아시아 쿼터를 통해 필요한 포지션을 보강한 구단은 굳이 많은 신인을 지명하지 않을 수 있다. 전년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V리그가 출범한 2005년 이후 가장 많은 21명이 지명을 받았고, 지명률은 직전 시즌(44%)보다 낮은 43%를 기록했다.
이번 드래프트에서 2순위 지명권을 받은 현대건설은 아웃사이드 히터 포지션을 보강하기 위해 태국 출신 위파위 시통(24·174cm)을 선택했다. 황민경이 FA(자유계약선수)로 풀려 IBK기업은행으로 떠났고, 고예림이 무릎 수술로 장기간 자리를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뒤이어 KGC인삼공사가 3순위로 인도네시아 출신 아포짓 스파이커 메가왓티 퍼티위(24·185cm), 한국도로공사가 4순위로 태국 출신 아포짓 스파이커 타나차 쑥솟(23·180cm)을 지명했다.
막내 구단 페퍼저축은행이 5순위로 필리핀 출신 미들 블로커 엠제이 필립스(28·182cm), GS칼텍스가 6순위로 인도네시아 출신 아웃사이드 히터 메디 요쿠(24·170cm)를 잡았다. 흥국생명은 마지막 7순위로 아웃사이드 히터와 아포짓 스파이커가 모두 가능한 일본 출신의 레이나 토코쿠(24·177cm)를 품었다.
이번에 처음 도입된 아시아 쿼터는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프로배구의 인기를 더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국내 선수들이 기회를 빼앗길 거란 우려도 분명 존재하지만 리그 수준을 한 단계 높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아시아 쿼터 제도를 도입한 의도대로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