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강제 퇴거를 막기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피해 주택을 매입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원희룡 국토부 장관과 이한준 LH 사장은 21일 오후 LH 서울지역본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LH 매입임대사업을 전세사기 피해물건에 우선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원 장관은 "최종 결론은 이번 주말에 낼 것인데 전세 피해가 시급하고 워낙 절박하다"며 "LH에 이미 예산이 잡혀 있고 사업 시스템도 갖춰진 매입임대제도를 확대 적용해 전세사기 피해 물건을 최우선 매입 대상으로 지정하기로 이를 범정부 회의에 제의하려 한다"고 밝혔다.
LH 매입임대주택은 이미 있는 주택을 매입한 후 개·보수를 거쳐 무주택 청년이나 신혼부부, 취약계층 등에 최장 20년까지 시세의 30~50% 수준으로 저렴하게 임대해 주는 사업이다.
원 장관은 "대상은 경매에 넘어간 물건인데 경매 우선매수권이 현재 입법이 돼 있지 않아 긴급 입법이 필요하다"며 피해 세입자가 우선매수를 원할 경우에는 우선매수권을 주고, 매수 의사 없이 주거 안정만을 원할 경우에는 매입임대로 돌려 임대를 제공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한준 LH 사장은 "올해 LH의 매입임대 사업 물량은 2만6천가구로 예산 5조5천억원이 책정돼 있다"며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돼 있는데 지방 도시도 일정 물량이 배정돼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이 제도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를 구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최근 이뤄진 매입임대 가격 조정 등에 따라 올해 사업 물량 매입이 이제 시작되는 단계로 물량 자체는 어려움이 없다"고 덧붙였다.
LH는 당초 강북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려 했는데 고가 매입 논란이 불거진 탓에 가격 산정 기준을 손보느라 매입 공고가 이달로 연기되면서 예정 물량과 예산에 여력이 충분한 상태다.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공사의 매매임대주택 물량 9천호까지 더하면 매입이 가능한 주택 수는 3만5천호까지 늘어나게 된다.
매입임대주택의 평균 가격은 가구 당 2억원 가량으로, 최대 7조원을 피해주택 매입에 활용할 수 있는데, 필요 시 주택도시기금 운용계획까지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원 장관은 "올해 LH의 매입임대 계획이 2만6천가구인데, 이 사업 물량을 돌리기만 해도 (피해 가구) 거의 모두를 포함하는 규모로 파악된다"며 "부족한 부분은 재정당국이랑 협의 후 늘리고, 필요하다면 전량을 매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조치는 피해자들에게 돌려주는 수단으로는 활용되지 못할 전망이다.
공공에서 피해 주택을 매입하더라도 해당 주택에 선순위 채권자가 존재할 경우에는 이들에게 먼저 매입 대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매입임대주택은 말 그대로 공공이 매입해 임대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그대로 해당 주택에 거주하더라도 새로운 임차인이 될 뿐이다.
원 장관은 "LH의 직접 매입을 원할 경우 전세사기 피해자는 임차인으로 사는 것으로 보증금이 나오지 않는다. 간혹 LH가 보증금을 다시 돌려주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니다"라며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면 (지원 과정이 거기서) 끝이고, 그렇지 않은 물건에 대해서는 다른 경매 낙찰자에게 쫓겨나지 않도록 LH가 경락(경매낙찰)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피해자가 원할 때 까지 유리한 조건으로 거주하도록 책임지려는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LH가 전세사기 주택을 매입할 수 있게 하려면 피해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할 때와 마찬가지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전세금 반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경매로 넘어간 물건 중 어떤 것이 단순 미반환이고 어떤 것이 전세사기 매물인지를 판단하는 기준 마련 등의 작업도 필요하다.
정부와 여당은 오는 23일 열리는 고위 당정협의회를 통해 관련 사안을 논의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