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에 당정도, 여야도 머리 맞댔지만…구제책 의문

당정 "임차인에 우선매수권…공공매입은 피해자 위한 것 아냐"
야권 "공공이 주택‧채권 매입" 주장에 원희룡 "할인율은 어쩌나"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세사기 근절 및 피해지원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전세 사기'를 당한 세입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당정과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에 나섰지만, 피해 구제를 위한 속 시원한 대책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당정은 사기 주택을 공공이 매입하는 방식엔 선을 그으면서 세입자에게 주택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방법을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보전해 줄 방법은 마땅치 않기 때이다.
 
20일 오전 당정회의에서 여당과 정부는 △금융권의 피해주택 경매·공매 유예 조치(제3자에게 채권을 매각하는 경우도 유예) △피해주택 경매 시 일정 기준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 부여 검토 △피해 임차인이 거주 주택 낙찰 시 구입자금 마련에 저리 대출 △조직적 전세 사기에 범죄단체조직죄 적용, 범죄수익 전액 몰수·보전 △찾아가는 상담버스 등 법률·심리 상담 제공 등 피해 대응 방향을 제시했다.
 
다만 공공 매입에 대해선 전날에 이어 반대 입장을 이어갔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하는 공공매입특별법은 피해자 보상이 아니라 다른 선채권자가 최우선이 되고 국가 재정에도 막대한 부담을 준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피해자를 위한 것도 아니다"라고 했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피해 사례) 전수조사에서 모두 선순위 근저당이 최대한도로 설정돼 (공공 매입으로) 피해자들에게 갈 수 있는 금액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부분에 대해선 더 이상 거론하는 게 소모적"이라고 말했다.
 
대신 당정이 강조한 건 피해 세입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다만, 현 제도상 이는 경매에서 제시된 가장 큰 금액에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박 의장은 "이 과정에서 임차인 권리 보호와 낙찰자의 이해관계 사이 균형을 이룰 합리적인 방안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가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덧붙였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세사기와 관련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하지만 이같은 방법은 피해자들이 잃은 보증금을 보전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선(先)보상 후(後)구상'을 요구하는 야권의 질타가 이어졌다.
 
전세 사기에 대한 질의가 집중된 이날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허종식 의원은 "피해자들이 어떻게든 희망을 가지려면 기금이든 정부의 공적 자금을 먼저 투입해 피해 구제를 한 뒤 건축왕이든 빌라왕이든 구상권을 청구해 일부를 받아내야 한다. (그러고서) 이 주택을 매입하거나 팔면, 그렇게  손해를 보지 않고도 충분하게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공공이 매입하면 채권자에만 이롭다고 하는데 이해가 안 간다. 제가 법안을 낸 보증금 반환채권을 매입하는 방법은 피해자에게 돈을 주는 거지, 선순위채권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며 "또 하나는 정부가 직접 깡통전세주택을 매입하는 건데, 이 경우 선순위 채권액보다 가격이 싼 경우에만 선별 매입하면 된다. 채권자도 손해를 보고, 정부는 재정을 투자해 피해자의 피해를 줄여주는 3자 고통 분담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원 장관은 "채권 매입, 즉 보증금 반환 채권 인수 제도는 지금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할인율"이라며 "(할인율 적용으로) 손실을 확정하는 것을 피해자들이 과연 용인하겠나"라고 말했다.
 
심 의원이 재차 채권 매입과 주택 직접 매입을 강조하자, 원 장관은 "무슨 돈을 가지고 어느 금액에(하란 것인가), 그 가격은 누가 정하나"라며 "할인하면 피해자가 수용을 안 하고 비싸게 사려면 납세자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도 공공 매입에 대한 검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지적은 나왔다.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은 전세 사기 유형에 따라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기획 범죄형 전세 사기는 대부분 근저당이 설정돼 (공공 매입을 하더라도) 피해자들에게 돌아가기 힘들지만, 임대인이 갭투자를 했거나 근저당 설정이 거의 없는 '바지 시장형'도 있다"며 "구입가격과 현재가격과 전세가격 등 여러 요소가 있는 만큼 피해자들도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필요한 경우 공공 매입으로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당정은 세입자와 채권자 사이 '균형'을 강조했지만, 세입자들의 절박한 사정을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우선매수권 부여 역시 특별법을 제정하든, 임대차보호법에 관련 내용을 추가해 개정하든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보증금을 보전하는 게 쉽진 않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세입자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할 방법을 모색해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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