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와 가스공사의 적자가 천문학적인 규모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에너지 요금 인상안 발표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민‧당‧정 간담회에서도 뚜렷한 결론을 나오지 않으면서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순방 이후인 다음달 초 인상안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전기‧가스요금 인상안 발표가 사실상 다음달로 미뤄졌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20일 오전 국회에서 민‧당‧정 간담회를 열고 추가 논의를 했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동안 네 차례에 걸친 당‧정협의에서 유일하게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부분만 공감대를 형성했다.
인상안 발표 날짜도, 인상 폭도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한전과 가스공사를 향해 날을 세웠다. 요금 인상을 앞두고 에너지 공기업들이 선제적으로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전기·가스요금 관련 산업계 민·당·정 간담회' 브리핑에서 "한전 직원들이 가족 명의로 태양광 사업을 한전 내 수천억 내부 비리 적발 자체감사 결과를 은폐하고 방만한 경영과 부패로 정상화하는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며 "도덕적 해이라는 늪에 빠져 요금을 안 올려주면 다 같이 죽는다는 식으로 국민을 겁박하는 여론몰이만 해선 안 된다"고 작심 비판했다.
선(先) 자구책‧후(後) 요금인상 기조를 바탕으로 한전과 가스공사에 고강도 자구책을 재차 주문한 것이다. 이날 간담회에선 토요일 심야 요금제 조정과 뿌리기금전력보조금 제도 신설, 납품단가 연동제에 전기요금 포함 등 산업계와 관련된 에너지 요금 대책이 논의됐다고 박 의장은 설명했다.
앞서 정부는 한전과 가스공사 등에 직원들의 성과급 반납 및 자산매각 등을 촉구한 바 있다. 지난 11일 열린 점검회의에서 산업부는 약 28조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주문했다. 비상경영체제 하에서 비용절감과 불필요한 자산매각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한전과 가스공사는 올해 임직원들의 급여 인상분과 함께 임원들의 성과급 반납을 검토 중이다.
문제는 최근 날씨가 풀리면서 전력수요가 점차 증가하는 가운데 한전의 적자 폭이 크게 늘어날 조짐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한전은 32조7천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만 전력 구입을 위해 한전채를 9조원가량 발행한 상태다.
한전이 지불하고 있는 일일 이자비용만 약 38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한전의 전력구입단가는 킬로와트시(KWh)당 153.7원으로, 판매 단가(120.5원)보다 약 30원이나 비쌌다. 지금도 전기를 팔면 팔수록 킬로와트시당 33.2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큰 폭의 요금인상 없이 현재 에너지 공기업들이 처한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지금은 전기요금 인상 폭이 많아야 킬로와트시당 10원 정도라는 말이 나오는데, 현 시점에선 30원 이상을 올려도 적자가 해소될까 말까한 상황"이라 "정치 논리가 에너지 정책에 개입하면서 중립성과 객관성을 잃었다"고 말했다. 에너지 공기업 관계자도 "정치권의 해법이 그나마 적자 문제에 해결이 된다면 억울하지만 희생이라도 하겠는데, 지금은 그것도 아니라서 답답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