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하니 문제 없어"?…새신랑 죽게 한 농협 괴롭힘 사건 노무사 입건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던 故 이용문(33)씨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남긴 SNS메시지. 유가족 제공

"킹크랩 사 와"라는 부당한 지시에도 전북 장수에서 서울 노량진까지 올라가 킹크랩을 사 왔던 장수농협의 30대 새신랑 故 이용문(33)씨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삶을 마치기 한 달여 전 농협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했으나 '혐의없음'으로 종결됐다. 이 사건을 조사한 노무사는 가해자와 지인 사이였다. 해당 노무사는 비밀을 누설한 혐의로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편향적 조사한 노무사 비밀 누설도…3년 이하 징역

전북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공인노무사법상 비밀 엄수 위반 혐의로 권모 노무사를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20일 밝혔다.
 
권 노무사는 지난 2022년 10월부터 한 달여 동안 장수농협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조사하며 노무 활동 중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한 혐의를 받고 있다.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 권 노무사는 편향적인 조사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부는 공인노무사회에 공인노무사법을 위반한 권 노무사에 대해 징계를 요구했다. 또 이모 상임이사와 권모 센터장, 윤모 과장, 정모 과장을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판단하고 장수농협 측에 징계할 것을 명령했다.
 
현행 공인노무사법은 노무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상 알게 된 사실을 타인에게 누설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으로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전북의 장수농협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직원 이용문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해 유족들이 지난 1월 25일 오전 전북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대한 기자

장수농협 가해자 지인 노무사로 선정…"조사 문제 없었다"?

이씨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받은 장수농협은 가해자인 권 센터장의 지인인 권 노무사를 선임했다. 권 노무사는 과거 권 센터장과 수차례 만난 사실이 확인됐다.
 
권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정식조사결과 심의위원회에서 "피신고인, 참고인의 진술과 증거여부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신고인이 주장한 모든 행위 종류가 입증되지 않아 근로기준법상의 직장 내 괴롭힘 성립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가해자 중 한 명인 이 상임이사는 "신고인 측에서 불복 등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당사자가 판단할 사항"이라며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불복한다면 우리 농협도 별수 없이 모든 사항을 법적으로 강력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용준 조합장은 "권 노무사의 무혐의 판단 의견과 장수농협 심의위원회 전원의 무혐의 판결에 따라 혐의없음 결론을 선포한다"며 심의위원회를 끝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심의위원회에는 이 상임이사와 비상임이사 3명, 노조 지회장, 직장 내 괴롭힘 관리책임자가 위원으로 참석했다.
 
앞서, 권 노무사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권 센터장과 아는 사이임은 인정하면서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사 과정은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유족의 고발장을 접수받은 경찰은 강요와 협박 혐의로 김용준 장수농협 조합장과 이모 상임이사, 권모 센터장, 윤모 과장도 입건하고 수사하고 있다.
 
이용문씨는 초·중·고 전라북도 레슬링 대표 선수로 활동했다. 군 복무 시절 유격 훈련을 받다 부상을 입어 국가유공자가 됐다. 매사에 성실했던 이씨는 지난 1월 12일 자신이 일하던 장수농협 인근에 차를 세워두고 그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신혼 3개월 차였다. 2022년 9월 한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친 그는 "직장 내 괴롭힘을 조사해 달라"며 장수농협에 신고했다. 그러나 장수농협이 선임한 노무사는 가해자의 지인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 심의위원회는 해당 노무사는 물론, 가해자가 위원으로 참석했다. 장수농협은 "도와달라"는 이씨의 마지막 목소리를 묵살했다.

전북경찰청 전경. 전북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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