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 '빌트인 가구 입찰'에 참여하면서 담합을 통해 입찰 단가를 부풀린 국내 가구업체 8곳이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진 업체들의 담합 규모는 9년간 2조 3천억원대에 이른다. 검찰은 이들 가구업체와 업체 대표 등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겼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이정섭 부장검사)는 한샘, 에넥스, 넥시스, 우아미 등 주요 가구업체 8곳과 최양하 전 한샘 회장 등 고위 임원 12명을 건설산업기본법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20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4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24개 건설사가 발주한 전국 아파트 신축현장 783곳의 주방·일반가구 공사에 입찰하면서 낙찰예정자 및 투찰가격 등을 미리 논의해 합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신축 아파트 특판 가구는 싱크대나 붙박이장 등 아파트 신축이나 재건축 사업에서 공동주택을 시공하면서 함께 빌트인으로 설치되는 가구다.
이번에 적발된 가구업체들은 신축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빌트인가구 납품 순번을 자기들끼리 합의해 미리 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낙찰 예정 회사가 타 가구업체에 입찰 가격이나 견적서를 사전에 공유하면, 나머지 업체는 더 높은 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해 자연스럽게 탈락하는 식이다. 이들 가구업체들이 약 9년 동안 짬짜미로 진행한 가구 공급 규모가 2조 3천억원대에 달한다.
부풀려진 가구 값의 부담은 고스란히 신축 아파트를 분양 받은 입주자 몫이 됐다. 아파트 분양가에 가구 값이 포함돼 입주자들은 정확한 가구 가격을 알 방법이 없고, 건설사는 가구 값 부담이 없어 적정성을 크게 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구업계 관계자는 검찰 조사에서 "담합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낙찰했을 경우보다 약 5% 정도 비싸진 것으로 보면 된다"고 업체가 챙긴 이익 규모를 설명했다고 한다.
앞서 검찰은 지난 12일 공정거래위원회에 가구 담합 의혹과 관련한 고발을 요청했다.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 기소를 위해 전속 고발권을 가진 공정위 고발이 필요해서다.
통상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공정위 고발로 검찰 수사가 시작되지만 이번 사건은 검찰이 먼저 인지해 수사한 뒤 기소 전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했다. 검찰이 2020년 12월 시행한 '카르텔 형벌감면제도(리니언시)'가 적용된 첫 수사 사례다.
애초 수사망에 오른 가구 업체는 9곳으로 알려졌지만 담합을 자진 신고한 현대리바트는 형벌 감면(리니언시) 대상으로 고발 요청 범위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향후 공정위는 입찰을 담합한 가구업체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과징금 등 행정제재 조치를 진행할 방침이다. 검찰은 과징금 산정 등을 위한 관련 자료를 공정위에 적극적으로 공유할 방침이다.
한편 리버스의 특판가구 영업담당 차장 박모(40)씨와 안모(43)씨는 검찰 압수수색 과정에서 외장하드를 숨기거나 자료를 삭제한 혐의(증거인멸 및 은닉 교사)로 약식기소됐다.
검찰 관계자는 "담합 근절 실효성을 위해 대표이사 등 최고 결정권자를 상대로는 적극적으로 책임을 추궁하고 상급자 결정을 수동적으로 이행한 실무 직원은 불입건했다"며 "하지만 당국 조사 이후에도 담합을 계속하거나 조사 현장에서 범법 행위를 한 실무자는 기소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