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제주 첫 호텔 동양여관…명성 사라진 자리 남은 건 삶 ②개발 광풍에도…제주 일식주택 100년간 서 있는 이유는 ③포구 확장하고 도로 건설…사라지는 제주 어촌 '소통의 빛' ④택지 개발로 사라질 위기 제주 4·3성…주민이 지켜냈다 ⑤'아픈 역사 축적' 제주 알뜨르비행장,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⑥무성영화 시대 제주 마지막 극장 철거…사라진 기억들 ⑦4·3으로 초토화 된 제주 중산간 마을…뿌리 내린 사랑 ⑧제주 최초 철골 건물 시민회관…허물어져도 기억은 유지 ⑨보존계획 세워놓고 철거…사라진 제주 근대 도시의 얼굴 ⑩한국건축계 '보존' 목소리에도…허물어진 '제주의 낭만' (계속) |
'내게도 소중한 작품이어서 오늘에 이르러 쇠퇴해가는 모습을 볼 때 무척이나 가슴 아프다. 길이 남겨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필자는 분노와 함께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고(故) 김중업(1922-1988)이 1984년 펴낸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의 한 구절이다. 자신이 설계한 옛 제주대학교 본관이 훼손되는 모습에 대한 탄식이다. 김중업이 '제주도의 낭만'이라고 칭했던 이 건물은 결국 1995년 철거됐다. 그 자리에는 고등학교 강당이 들어섰다.
관능적인 곡선 경사로…"입체화된 산책로"
옛 제주대학교 본관은 1964년 10월 첫 삽을 뜬 뒤 1970년 돼서야 완공됐다. 본관 신축 공사는 제주대가 국립대학으로 승격되는 과정에서 이뤄진 주요 사업이었다. 제주대학교가 지금처럼 발전하게 된 토대다. 제주대 발전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기념비적인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제주시 아라동 캠퍼스로 자리를 옮겼지만, 옛 제주대 본관은 제주시 용담동 부지에 4층 규모의 건물로 지어졌다. 전면보다 낮은 1층에는 학생 회의실과 학생식당이, 2층에는 도서관과 행정실, 3층에 교수연구실, 옥상 층에 대학박물관과 옥외 강의실이 있는 다용도의 복합건물이다.
프랑스 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였던 김중업은 옛 제주대 본관을 설계할 때 스승의 기능주의적 철학을 적용하면서도 주변 풍토를 고려한 조형적 이미지를 녹여냈다.
1층과 2층을 기둥과 벽체가 분리된 단순한 형태로 구성한 반면, 교수연구실이 있던 3층을 바다 위에 떠 있는 선박 형태로 설계했다. 조개껍질을 펼쳐놓은 것처럼 보이는 현관도 독특하다. 특히 각 층을 잇기 위해 건물 외부 3곳에 설치된 곡선 형태의 경사로는 부드럽게 휘어져 관능적이다.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이용규 교수는 "보통 계단은 실용적으로 빨리 이동시키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옛 제주대 본관의 경사로들은 천천히 이동하면서 한라산과 바다를 볼 수 있도록 했다. 1층부터 4층까지 한 건물을 산책하도록 만든 것이다. 산책로를 평면화가 아닌 입체화시켰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970년대 초중반 제주대학교를 다녔다는 고정수(70)씨는 옛 제주대 본관을 이렇게 기억했다. "옛날에는 직각 형태의 건물만 보였는데, 본관 건물은 곡선 형태여서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나선형의 경사로를 걷고 있으면 바다도 보이고 산도 보였다. 졸업사진도 본관 건물 앞에서 찍었다."
보존 운동에도…방치·훼손되다 결국 철거
한국 건축계 거장 김중업 건축가의 대표 작품이었던 옛 제주대학교 본관은 1984년 부속고등학교가 들어서면서 벽면 일부가 철거되는 등 훼손됐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건물 균열이 심해졌다. 적절한 보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방치됐기 때문이다. 잦은 공간 변형도 균열의 원인이었다.
급기야 구조적 문제까지 제기되면서 건축학계에서 옛 제주대 본관을 철거할 것인지, 보존할 것인지를 놓고 활발한 논의가 이뤄졌다. 1992년 11월 열린 한국건축가협회 이사회에서는 옛 제주대 본관의 보존에 관한 안건이 상정됐다. 같은 해 12월 김중업의 제자들이 기초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듬해 2월에는 한국건축가협외와 제주대 공동 주최로 보존 방안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옛 제주대 본관이 갖는 예술성과 상징성, 그리고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해 보존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한국건축가협회도 옛 본관이 중대한 자산으로 남아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옛 제주대 본관은 보전되는 듯했지만 결국 1995년 10월 허물어졌다. 지역 문화‧예술계와 한국건축가협회의 만류에도, 제주대 측은 보수비용 등을 고려해 철거 결정을 내린 것이다.
김중업의 제자이자 보존 운동을 벌였던 건축사사무소 김건축 김석윤 소장은 "옛 제주대학교 본관은 기하학적 추상 등 모더니즘을 추구했던 김중업 선생의 건축 어휘와는 다른 모습의 건물이었다. 곡선이 두드러졌는데 감성적인 대표작이다. 당시 건물을 철거해서 참담하고 애석했다"고 소회했다.
"지금 남아있다면 대단한 보물이자 살아 있는 박물관이 됐을 거다. 제주에 관광 온 사람이 찾아가고 건물에 대해 얘기하며 일반 시민들의 건축 이해도가 높아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28년 만에 재현 논의…"새로운 이야기 시작"
허물어진 뒤 수십 년간 서서히 기억에서 잊히던 옛 제주대학교 본관. 현재 그 자리에는 제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강당이 들어서 있다. 나선형 경사로도, 선박을 닮은 건물도 없다.
하지만 철거된 지 28년 만에 옛 제주대학교 본관의 복원 또는 재현 논의가 시작됐다. 지난해 3월 취임한 김일환 제주대 11대 총장이 옛 본관 복원을 검토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다. 현재 구체적인 예산이나 계획은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제주대 건축학부에서 관련 정책연구를 완료한 상태다.
철거 당시 아카이빙 작업을 하지 않은 탓에 옛 본관 원도면이 남아있지 않다. 정확한 복원도면 작성에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복원 방식을 두고 △옛 본관 재현 △나선형 경사로 등 옛 본관 건물의 특징을 딴 구조물 재현 △젊은 건축가의 김중업 재해석 등이 논의되고 있다.
제주대학교 기획평가과 강승원 팀장은 "옛 제주대 본관 복원 또는 재현 의사 결정은 돼있다. 현재까지 구현하게 되면 어떤 뜻이 있는지 등 정책연구를 진행했다. 아라캠퍼스 내 부지에 조성하려는데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언제 설계하고 어느 위치에 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옛 제주대 복원 또는 재현 논의에 대해 이용규 교수는 "어떤 형태로든 복원한다면 또 다른 의미의 시작이기도 하다. 시원치 않게 잘 마무리하지 못한 옛 본관에 대한 예의이자, 반성이기도 하다. 옛 본관을 넘어설 만큼 멋지게 지어진다면 또 다른 제주대학교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고(故) 김중업은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다. 프랑스 건축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다. 김중업은 스승의 모더니즘 건축 문법과 한국의 서정을 혼용시켜 한국 모더니즘 건축의 새장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프랑스대사관, 삼일로빌딩, 평화의문 등이 있다. 세상을 떠나기까지 무려 200여 작품을 남겼다. 제주에는 옛 제주대 본관뿐만 아니라 제주대 서귀포캠퍼스 등이 있다. 현재 대부분 철거됐으며 옛 수산학부 본관만 남아 서귀포중앙여자중학교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