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하락과 깡통전세 우려 등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전세시장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전셋값 하락이 이어지는 가운데 기준금리가 조금씩 떨어지면서 월세 시장으로 옮겨갔던 세입자들이 다시 전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서다.
다만 이런 변화는 아파트 시장에 한정된 것이다. 전세사기 우려가 커지고 있는 빌라 전세시장은 거래에 씨가 마르며 소멸 위기에 처했다. 전세사기 우려에 따른 빌라 전세 기피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출금리 내리고 월세 오르자 아파트 임대차 수요, 월세→전세
19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날 기준 3월 서울 아파트 임대차 거래 1만9814건 중 1만2307건은 전세 계약으로 체결되며 62%를 차지했다. 서울 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전세 비중이 60%를 넘어선 것은 지난해 8월(60.3%) 이후 7개월만이다. 특히 △강서구(73.5%) △도봉구(72.4%) △강동구(71.5%) 등은 임대차 거래 10건 중 7건이 전세로 체결됐다.거래량도 회복 추세다.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량은 지난해 11월 9514건을 기록한 뒤 회복되기 시작해 월 전세 거래량 1만건대를 유지하고 있다.
거래 체결로 매물도 빠르게 줄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19일 기준 서울의 아파트 전세 매물은 4만2289건으로 한 달 전보다 9.3% 줄었다. △마포구(-24%) △성북구(-20.3%) △동작구(-20.2%) 등은 전세 매물 감소폭이 더 컸다.
경기 아파트 상황도 비슷하다. 경기부동산포털에 따르면 올해 1월 경기 아파트 임대차 거래 2만6851건 중 57%인 1만5533건이 전세 계약으로 체결됐다. 최근 한달 새 전세 매물은 9.4%(5만6221건→5만985건)으로 줄었다.
기존 임대차 시장에서는 월세보다 지출이 적은 전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지만 지난해 하반기 대출금리 급등으로 전세보증금을 대출받아서 내는 이자보다 월세로 내는 금액이 적어지자 세입자들이 전세시장에서 월세시장으로 이동하며 '전세의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하지만 수요가 몰리자 월세가 가파르게 올랐고, 대출금리까지 내리며 월세 전환보다 전세대출이 유리한 상황이 되자 임대차 수요 일부가 다시 전세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 말에는 전세는 물론 전월세 문의 자체가 거의 없었는데 어쩌다가 손님이 오게 되더라도 반전세만 찾아서 전세를 내놓은 집주인들에게 '반전세로 전환할 수 있느냐'는 전화를 돌리는 것이 다반사였다"며 "전세대출금리가 떨어지면서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바꿔서 반전세로 계약하기보다 전세대출을 받아 이자를 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세입자들이 점점 전세를 찾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출금리 내렸지만 전세사기 우려는 여전…빌라 전세 시장은 한파 계속
아파트 전세 시장은 기지개를 펴고 있지만 빌라 전세 시장은 한파가 이어지고 있다.
집주인들이 빌라를 이용해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채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빌라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서다.
18일 기준 올해 1분기 서울 빌라(다세대·연립) 전월세 거래량 2만 7617건 중 전세는 1만 4903건으로 전체의 54.0%를 차지했다. 이런 비중은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이 관련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1분기 기준 가장 낮은 수준이다. 특히 △노원구 42.2% △종로구 42.6% △강남구 43.0% △송파구 44.8% △서대문구 46.0% △관악구 46.3% △중구 47.0% △서초구 49.9% 등은 전월세 거래 2건 중 1건도 전세로 체결되지 못했다.
거래량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3월 서울 빌라 전세 거래량은 5224건으로 지난해 3월(7817건) 66% 수준에 머물고 있다. 3월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량(1만2307건)이 지난해 3월(1만2793건) 수준으로 회복한 것과 대조적이다.
상대적으로 저가 빌라가 더 많은 경기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올해 1월 경기 빌라 전세 거래량은 1721건으로 1년 전(2022년 1월 3209건)의 53% 수준에 머물러 있다. 1월 경기 아파트 전세 거래량(1만5533건)은 1년 전(1만7732건)의 87% 수준까지 회복됐다.
특히 '전세사기 지역'으로 낙인찍힌 서울 강서구 화곡동과 인천 미추홀구 등은 전세 수요가 씨가 말랐다는 전언이다.
이런 냉랭한 분위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빌라 전세사기의 주요 고리로 꼽히는 '깜깜이 시세', 집주인과 세입자간 정보 비대칭 문제 등이 단시일 내 해결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국토교통부나 한국부동산원 등을 통해 실거래가 통계를 확인할 수 있고 민간 부동산 플렛폼 등을 통해 호가 상황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빌라는 형태가 다양하고 세대 규모도 작아 비교 대상이 부족해 시세를 파악하기 어렵다. 인위적으로 호가를 조작하기 쉬운 편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연구위원은 "빌라 전세사기 범죄의 핵심은 정확한 시세 파악이 어렵다는 점"이라며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대책들이 나온 만큼 보다 정확한 시세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