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강원 강릉시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수백 명의 이재민들이 임시대피소에서 머물며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일부 이재민들은 당시 충격적인 산불 상황을 떠올리며 트라우마까지 겪고 있어 더욱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15일 오전 찾아간 강릉아레나 경기장. 지난 2018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곳이지만 지금은 산불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 대피소가 꾸려졌다.
지난 11일 최악의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 149세대 311명이 이 곳에 마련된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15세대 54명은 녹색도시체험센터에서 9세대 23명은 지인 집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재민 대부분 긴박한 상황에서 겨우 몸만 빠져 나온 터라 갈아 입을 옷도 없고, 일상에 필요한 용품들도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좁은 텐트 안에서 생활하는 어르신들은 제대로 눕기도 힘들어 보였다.
특히 대피소에서 공동생활을 하다보니 먹고 자는 기본적인 의식주부터 불편한 것을 비롯해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든 상황. 상당수가 고령인 이재민들은 산불 이전의 아늑했던 보금자리가 그저 그립기만 하다며 망연자실하고 있다.
이재민 권완자(84)씨는 "(그동안 항암 치료를 받아 온) 나는 몸이 아프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보다 더 불편하지. 무엇보다 우선 잠자리가 불편하니까"라며 "바닥에 매트와 담요 등을 깔았지만 밤이 되면 밑에서 냉기가 올라와서 춥기까지 해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있다"고 불편함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지내다보니 40년 동안 살았던 집이 그립고 자꾸 생각나고 눈물이 나. 정말 너무 그리워"라며 "하루빨리 안정된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화마가 집어 삼킨 것은 삶의 터전만이 아니다. 이재민들에게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도 남겼다.
한 평생 보금자리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하는 모습을 목격한 주민들은 여전희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재민들은 당시 상황이 아직도 생생하고 잊혀지지 않는다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홍진주(70)씨는 "40년 동안 민박을 하던 집에서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그냥 슬리퍼를 신은 채 강아지 두 마리만 챙겨 나왔다"며 "남편은 지금도 당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어제부터는 지인들에게 안부 전화가 와도 울고, 가만히 있다가도 갑자기 눈물을 계속 흘려 병원에서 약까지 지었다. 나도 불에 탄 집 생각만 하면 가슴이 떨린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재민 최모(76)씨 역시 "당시 논으로 대피하고 있는데 불이 집으로 향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그 날의 악몽이 자꾸 생각나고, 생각이 나면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빨리 잊혀졌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강원도재난심리회복센터는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이재민들을 위해 임시대피소에 심리 상담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이 곳에서는 현재 정신적으로 힘든 이재민 수 십 명이 상담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심리상담을 받은 뒤 치료가 필요한 주민은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연계할 방침이다.
센터 관계자는 "대다수 이재민들이 첫날, 둘째날은 아무 생각이 없을 상태라 그 시기는 우리가 관찰하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를 고민했다"며 "어제부터 주기적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부분에 대해서는 접근하는 게 쉽지 않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분들은 상담 전문센터로 연계를 해 치료를 받울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피소에서 만난 이재민들에게 더욱 절망적인 것은 이 같은 상황을 언제 벗어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에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실질적인 지원책이 나오길 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전모(82)씨는 "우리야 언제 나갈 지 그런 걸 모르니까 더 힘들지. 언제쯤이면 나가겠다는 것을 대략적이라도 알면 좀 낫겠지만, 그걸 모르잖아"라며 "임시주택을 만들고 해야하는 상황에서 지금 정부도 확실한 답을 주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또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도 딱한 사정이라 그저 답답한 마음"이라고 토로했다.
강릉시는 임시 거주시설을 비롯해 녹색도시체험센터와 모텔 등의 숙박시설로 이재민들의 거처를 옮길 계획을 세우고 있다. LH도 최근 강릉 산불 이재민을 위해 공공임대주택 30호를 확보하고 지원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강릉시 관계자는 "이재민들이 보다 나은 시설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임시 조립주택과 LH 공공임대주택, 녹색도시체험센터와 모텔 등의 숙박시설을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대피소에서 만난 이재민들은 한 목소리로 "여기 있는 모든 주민들이 힘들고 지쳐 있지만,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며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지만, 이번 산불의 경우 삶의 보금자리와 함께 생업을 잃은 분들이 많은 만큼 보다 실질적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앞서 지난 11일 오전 8시 22분쯤 강릉시 난곡동에서 발생한 산불은 8시간 만인 오후 4시 30분쯤 주불이 잡혔다. 특히 이번 산불은 기존 산불과 다른 '도심형 산불'로 확산하면서 주택과 펜션, 상가 등 건축물 피해가 컸다.
이번 산불로 지금까지 주택 126동, 숙박시설 7동 등 223동의 건축물 재산피해가 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 가운데 전파는 165동, 반파 29동, 부분 파손 29동 등으로 조사됐다. 인명 피해는 주민 1명 사망했고, 추가로 경상 1명이 추가돼 모두 20명으로 늘었다.
이처럼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면서 정부는 지난 12일 강릉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이에 따라 빠르게 피해지역을 복구하고, 피해 주민이 신속하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행정·재정적 지원이 가능해졌다. 시는 피해주민 신고접수를 바탕으로 관계부처 간 합동조사를 통해 복구계획를 조속히 마련할 방침이다.
김홍규 강릉시장은 "이번 산불은 기존 산불과 달리 '도심형 산불'로 건물이 많이 타 피해액이 크고, 이재민도 많이 발생했다"며 "긴급복구비가 기존 산불과 달리 많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돼 정부에 특별지원금 150억 원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