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재표결 됐지만 결국 부결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새로운 양곡법을 거듭 발의해 다시 국회를 통과시키는 방안 등을 놓고 고심 중이다. 이른바 '민생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을 유도해 정부·여당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재표결 정족수 못 미쳐 부결…野 "국민의힘, 소신투표 안 해"
국회는 13일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재석 의원 290인 중 가결 177명, 부결 112명, 무효 1표로 부결했다. 대통령이 재의 요구한 법안을 재표결할 경우, 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전원 출석할 경우 20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달 23일 의석 수로 밀어붙여 한 차례 양곡법을 통과시켰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법안이 다시 국회로 넘어왔다. 민주당은 법안을 재표결에 부치겠다고 나섰고, 국민의힘은 부결을 당론으로 정하며 강하게 맞섰다.
민주당은 13일 표결에서 양곡법이 부결되자 국민의힘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본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농민들과 농업의 미래, 식량 주권을 염려하는 우리 국민들께 참으로 면구하다"며 "농민과 농촌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국민의힘이 소신투표를 할 것이라고 기대했건만 결과는 정반대로 확인됐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전면 부정하고 무시한 대통령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며 "대통령의 이러한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용산출장소에 대해서도 규탄한다"고 지적했다. 향후 대책에 대해서는 "농민들, 농민단체와 직접 소통하면서 대책을 어떻게 마련해나갈지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곡법 또 발의할지 고심 중…"당론 발의해야" 목소리도
민주당은 수정된 양곡관리법을 새로 발의하는 방안 등을 놓고 고심 중이다. 민주당이 민생 입법을 냈는데 정부·여당이 이를 저지하는 모양새가 이어지는 게 정치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당 안팎에서는 재표결 전부터 부결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그럼에도 표결에 부침으로서 여당에 정치적 부담을 가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양곡법 통과 필요성을 주장하는 여론이 크다는 점도 민주당 입장에서는 추가 입법을 고려할 만한 요인이다. 공동 여론조사 기관이 지난 10~13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전국지표조사(NBS)를 진행한 결과, 윤 대통령의 양곡법 거부권 행사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51%에 달했다. 이는 문제가 없다는 응답보다 13%p 많은 수치다. 대통령이 향후 쟁점 법안이 넘어올 경우 쉽게 거부권을 행사하기에는 부담스러워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
당내에서는 일부 수정된 양곡법을 다시 발의해 통과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 농해수위 야당 간사 민주당 김승남 의원은 12일 기자들과 만나 "법이 부결됐을 경우 전문가와 논의해 당론으로 대안을 만들지, 의원님들이 개별적으로 입법할 것인지는 추후 논의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른 농해수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당 차원에서 의견을 모아 다시 양곡법을 만든 뒤 통과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정부여당이 민생을 발목 잡는 행태에 대해 당 차원에서 심각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번에 부결된 수정안이 아닌 기존에 민주당이 내놓은 양곡법 원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