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곳곳에 뿌리내린 한류 덕에 한국산 문화 콘텐츠가 전 세계인들의 특별한 관심을 모으는 시대다. 학원물 역시 그렇다. 지난해 넷플릭스를 타고 소개돼 신드롬을 낳은 '지금 우리 학교는'을 필두로 현재 티빙에서 방영 중인 '방과 후 전쟁활동'으로 그 흐름은 자연스레 이어지는 분위기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한국산 학원물이 좀비와 같은 가상의 괴생명체를 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싸움 잘하는 주변의 다른 학생이라는 적이, 이제 뚜렷한 실체를 알 수 없는 괴물로 옮겨간 것이다.
결국 학원물 속 학생들 '내부의 적'은 이제 '외부의 적'에게 그 자리를 내준 셈이다. 왜일까? '방과 후 전쟁활동'과 '지금 우리 학교는'이 그 답으로 향하는 길을 평평하고 고르게 다지고 있다.
동명 인기 웹툰에 원작을 둔 '방과 후 전쟁활동'은 어느날 지구를 침공한 미확인 구체에 맞서 펜 대신 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 10대들의 사투를 그린다.
극중 고3들은 수능 가산점을 받기 위해 전쟁에 나선다. 평범한 학생들은 본인들 의지가 아닌 어른들에게 떠밀려 총을 들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누구랑 싸우는지 모르는 전쟁을 하고 있다.
이 작품 극본을 맡은 윤수 작가는 "진짜 무서운 존재는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될지도 모를) 구체가 아닌, 보호 받아 마땅한 아이들에게 총을 들게 한 어른들"이라며 "결국 우리 아이들이 겪는 전쟁은 지금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꼬집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가 좀비로 변해 공격해 온다. 구조대는 아무리 기다려도 올 기미가 없다. 결국 학생들은 우여곡절 끝에 교실 밖으로 나와 구조대를 만난다. 하지만 구조대는 아이들을 향해 싸늘한 총구를 겨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을 집필한 천성일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우리의 무관심이 만든 절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했다.
특히 그는 "원작(웹툰)에는 좀비 바이러스가 외계 생명체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나오는데, 그것을 '우리가 만들어 낸 존재'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다"며 "재난이나 재앙의 근원이 우리라면 그것을 극복할 힘도 우리 안에 있지 않을까"라고 강조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 '방과 후 전쟁활동'과 같은 한국산 학원물은 극한의 위기 속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학생들을 그리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이들을 위기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세력과 같은 다양한 인간군상을 드러내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현대 학원물에 담긴 뚜렷한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결국 우리 스스로 겪으면서 고통 받았던, 부조리한 것들을 후대에 물려 주는 일은 사람의 도리, 어른의 도리가 아니라는 웅변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