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 속 '창덕궁 달빛기행'…눈 호강에 90분이 짧다

어진 정치를 펼친다는 뜻의 인정전. 구병수 기자

12일 '창덕궁 달빛기행' 사전 행사가 열렸다.

지독한 황사로 달빛이 차단된 창덕궁의 밤 풍광은 어떨까? 달없는 달빛기행이라니.

창덕궁 밤마실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많은 글과 사진을 통해 낮에는 볼 수 없는 창덕궁의 황홀한 자태는 익히 알곤 있었다.

7시20분 창덕궁의 정문이 돈화문의 문이 열리고, 1조 25명이 청사초롱을 손에 들고 해설사 뒤를 따랐다.

궁궐 내부로 들어갈 때 그 경계를 의미하는 개울을 금천(禁川)이라고 하는데 그 곳에 놓은 다리를 창덕궁은 금천교(錦川橋)라 부른다.

비단물결이 일 것 같지만 건조한 날씨 탓에 바닥에는 물기조차 없었다.

해설사 말로는 착한 사람에게만 흐르는 물이 보인단다. 금천교를 건너 진선문을 지난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에 이르렀다.

어진 정치를 펼친다는 뜻의 인정전은 웅숭깊은 뜻을 품은 듯 화려하면서 기품이 있었다.

인정전의 측면. 하늘로 뻗은 처마 곡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구병수 기자

해설사는 "인정전은 정면에서 보면 웅장하고 화려하고, 측면에서 보면 하늘로 뻗은 처마 곡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궁궐 처마의 곡선이 버선코의 곡선을 빼박았다고 하던데 기상은 높되 거만하지 않다.

인정전에서 조금 더 걸어가 만난 희정당은 현관에서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입구가 포치형으로 돌출돼 있다. 희정당은 골격은 조선 것이지만 호텔식 입구와 카펫,유리창문,샹들리에 등 서양식으로 꾸며졌다.

이날은 입구 일부만 공개해 유리창문과 샹들리에 등을 볼 순 없었다.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백제의 미학이요, 조선의 미학으로 이어져 왔다고 하는 궁궐을 지을 때의 마음가짐이다.

인정전이 화이불치라면 희정당을 지나 만난 낙선재는 검이불루의 대표적 건물이라고 해설사는 설명한다. 낙선재는 화려한 단청 없이도 단아한 기품을 내뿜는다.

낙선재는 화려한 단청 없이도 단아한 기품을 내뿜는다. 구병수 기자

조선 헌종이 후궁인 경빈 김씨를 맞아 생활 공간으로 지었다는 낙선재는 해설사의 말을 빌면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이었다.
 
계단식 화단인 화계(花階)를 지나 낙선재 뒤에 솟은 언덕의 상량정에 닿았다.

상량정은 낙선재 후원 언덕에 우뚝 서 있는 육각형 누각이다. 구병수 기자

시원한 곳에 오르다라는 뜻을 지닌 육각형 누각에서는 대금의 청아한 소리가 긴 여운을 남기며 공간으로 퍼져 나갔다.

귀명창이 소리명창을 낸다고 했는데 대금의 선율이 밤공기에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것 외에는
대금연주자가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알아들을 만한 귀를 갖고 있지 못해 아쉬울 뿐이었다.

어둑한 고샅길을 걷는 듯 하더니 후원에 도착했다. 후원에서도 아름답기로 이름난 부용지와 부용정 일대가 눈을 압도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이른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에 따라 조성된 연못 부용지와 부용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주합루는 단연 일품이었다. 녹음이 짙어지는 봄밤 연못가를 거니는 왕과 왕비는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후원에 있는 2층짜리 누각 주합루는 연못 부용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병수 기자

왕의 만수무강을 염원하며 세운 불로문을 지나면 숙종의 연꽃 사랑을 담은 애련지와 애련정이 나온다. 홀로 선 정자가 연못에 비친 자신과 담소를 나누며 고독을 씻는 듯 하다.

숙종이 연못(애련지)에 핀 연꽃을 감상하게 위해 세운 정자(애련정). 구병수 기자

달빛 기행은 순조가 연회를 베풀기 위해 1820년대에 조성한 연경당에서 전통차와 약과를 먹으며 전통 공연을 보면 끝이 난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이날부터 6월 4일까지 매주 목~일요일에 진행된다.

무료관람은 아니다. 눈 호강 만으로도 3만원의 관람료 값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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