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악화 우려 예타 기준 완화는 정치권과 기재부 합작품

지지부진하던 국회 국가재정법 개정 논의, 기재부 제도 개편 방침 발표 이후 본격화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 가결. 연합뉴스

지난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여야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현행 국가재정법 제38조 1항은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면서 국가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신규 사업 예산을 편성하려면 미리 예타를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개정안은 도로, 철도, 항만, 공항 등 SOC 사업과 국가 R&D 사업의 경우 예타 기준을 총사업비는 1천억 원, 국가 재정 지원 규모는 500억 원으로 크게 올렸다.

개정안이 여야 만장일치로 기재위 소위를 통과한 만큼 기재위 전체회의 등 후속 절차를 거쳐 이달 임시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하다.

이렇게 되면 1999년 도입된 예타 기준이 24년 만에 바뀌는 것인데, 그간 예타 장벽에 가로막혔던 각종 SOC 사업 추진도 한결 수월해질 전망이다.

특히,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예타 기준이 대폭 완화하면서 사업성 고려를 등한시한 선심성 지역 공약 사업이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분별한 대형 SOC 사업 추진은 불필요한 재정 소모로 이어지는 만큼 경기 둔화 여파로 가뜩이나 심각한 국가 재정 상황 악화 우려도 증폭될 수밖에 없다.

올해 들어 2월까지 국세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5조 7천억 원이나 덜 걷혔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세수 결손' 가능성까지 언급한 마당이다.

게다가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11일 발표한 '4월 세계경제전망(WEO)'에서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2.4%로 기존 대비 0.2%p 낮추는 등 경기 둔화 장기화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이 때문에 여야 정치권에 '포퓰리즘'이니 '표(票)퓰리즘'이니 따가운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예타 기준 대폭 완화에는 오히려 정부가 더 적극적이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6월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서 예타 제도 개편 방향을 밝힌 데 이어 같은 해 9월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예타 제도 개편 방안을 확정했다.

개편 방안 핵심은 12일 국회 기재위 소위에서 의결된 그대로다.

당시 기재부는 예타 제도 개편 명분으로 우리나라 경제와 재정 규모 확대에도 1999년에 도입한 예타 기준이 20여 년째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12일 오전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가 신동근 위원장 주재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기재부는 그러면서 여야 의원이 제출한 관련 국가재정법 개정안 8건이 이미 국회 기재위에 계류 중인 사실도 강조했다.

실제로 예타 기준 완화를 위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6월부터 발의가 잇따랐지만,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예타 기준 완화 국회 논의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지난해 6월 기재부가 제도 개편 방침을 밝히면서 본격화했다.

지난해 12월 5일 기재위 경제재정소위는 그때까지 계류된 국가재정법 개정안 8건을 병합 심사해 지난 12일 소위에서 의결된 개정안 내용에 잠정 합의를 이뤘다.

이후 국민의힘 박형수 의원은 총사업비와 국비 지원 기준을 각각 1200억 원과 700억 원으로 한층 더 올리는 개정안까지 발의했었다.

결국, 24년 만의 예타 기준 대폭 완화는 여야 정치권과 기재부 합작품인 셈이다.

이른바 '건전재정'을 부르짖는 기재부가 무분별한 선심성 SOC 사업 남발로 재정 낭비를 부추길 수 있는 예타 기준 대폭 완화에 앞장선 것도 기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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