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엄마 귀신'에서 '동은 엄마' 그리고 이제는 '박지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정미희 역 배우 박지아 <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정미희 역 배우 박지아. 박지아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박지아'라는 이름을 몰라도 영화 '기담' 속 '아사코 엄마' 혹은 '엄마 귀신'은 많이들 기억하고 있을 거다. '기담'을 보지 않은 사람조차도 '엄마 귀신'은 알 정도로 영화 속 가장 소름 돋고 섬뜩했던 신은 아사코 엄마가 등장한 짧은 장면이었다.
 
'더 글로리'에서도 박지아가 연기한 정미희는 사실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몇 분 안 되는 등장에서조차 문동은(송혜교)의 엄마 정미희는 매우 강렬하게 시청자들의 마음에 분노를 한가득 안기고 떠났다. 그 정미희와 그 아사코 엄마는 같은 배우가 연기했다. 아직도 '더 글로리' 속 정미희가 '기담' 속 엄마 귀신이라는 사실에 놀라는 시청자도 있다.
 
박지아의 연기는 그만큼 강렬하게 각인된다. 캐릭터 자체의 강렬함도 있지만, 그가 가진 캐릭터 해석력과 표현력 그리고 연극 무대에서 오랜 시간 다져진 내공이 만든 결과다. 박지아는 송강호, 이성민, 전혜진, 문소리, 강신일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속했던 극단 차이무 출신이다. 2002년 영화 '해안선'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후 무대와 스크린, 브라운관을 오가며 자신만의 연기를 쌓아 올렸다.
 
박지아는 연기를 하는 게 재밌다고, 어떤 인물이 될지 생각하는 게 재밌다면서 눈을 반짝였다.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연기가 재밌다고 말하는 박지아의 얼굴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연기'에 대한 박지아의 사랑과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빛나는 순간에서 시작한 배우의 길


▷ 파트 1과 파트 2 사이 18년의 세월을 지낸 정미희를 그리기 위해 7㎏이나 감량했고, 그 상태로 8~9개월을 지냈다. 원래 그렇게까지 고되게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스타일인 건가?
 
내가 굳이 그렇게까지 한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 너무 과하게 포장될 수 있는 말이긴 한데, 어떤 인물을 만든다는 건 한 사람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고통과 시간, 수고가 들어가듯이 내가 한 인물을 만드는 데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넣어야지 마음이 편하다. 그게 한 장면이든 반 장면이든 할 수 있다면 하는 게 행복하다.
 
▷ 이쯤 되면 '배우 박지아'의 시작점이 궁금해진다.
 
고등학교 때 학예회 같은 데서 발표하면서 시작했다. 난 약간 외톨이였던 거 같다. 그런데 학예회 때 발표하고 나니까 나에게 박수를 쳐주더라. 난 세상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람인데, 내가 꼭 있어야 하는 사람처럼 날 바라보며 박수쳐주는데…. 그 순간이 나한테 아마, 어렸을 때까지 삶 중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던 거 같다. 그 빛남이 또 올 수 있을까 하면서 학교도 가게 됐다. 가서도 방황하고, 그러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거 같다.(웃음)
 
▷ 방황하면서도 지금까지 배우 박지아를 있게 한 어떠한 원동력이나 목표가 있었던 걸까?
 
나는 도대체 뭐 하며 먹고 살아야 하나, 그런 시간을 굉장히 오래 가졌다.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맞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려움이 있다면 해결하거나 내가 헤쳐 나가야 하는 일이지 그것 때문에 재밌는 일을 놓치는 건 너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일보다 연기하는 게 세상에서 최고로 재밌다. 생각도 많이 하고 때려 칠까도 했지만, 이렇게 재밌는 일을 안 하고 어떤 일을 하겠다는 거지? 그냥 하자.(웃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정미희 역 배우 박지아. 박지아 제공
 

사랑하는 나, 재밌는 연기, 나를 알게 해 준 '더 글로리'

 
▷ 배우로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 봤을 때 박지아에게 '더 글로리', 그러니까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다고 생각하나?
 
지금이다. 시작은 나도 이렇게 빛날 수 있는 사람이구나로 시작했지만, 이미 40대 초반에 빛나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 생각을 버리니까, 그러니까 그게 중요해지지 않으니까 그냥 가기만 하면 된다. 빛나겠다는 목표가 있으면 뭘 해야 하고 애써야 한다. 그런데 그게 중요하지 않고 오면 잠깐 웃었다가 또 가면 되는 거지 싶다.
 
그냥 하고만 있어도, 이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재밌다. 그럼 된 거 아닌가. 그래서 요즘은 사는 것 자체가 재밌다. 나의 오랜, 아주 어두웠던 시절 친구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미쳤냐고 할 거다.(웃음) 내가 어둡고 생각이 많았던 사람이라 다들 "쟤가?" 그럴 거다. 나도 많이 변한 것 같다.

 
▷ 연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이 재밌는 건지 궁금하다.
 
단순하게 말하면 소꿉놀이하는 것처럼 재밌다. 엄마도 되어보고 남자도 되어보고 미친 사람도 되어보고. '어떤 아빠일까?' '어떤 엄마일까?' '어떤 사람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노는 게 너무 재밌는 일인 거 같다. 그 소꿉놀이가 재밌어서 '다음에는 뭐 할래?' 생각하게 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 아직 배우 박지아의 안에는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다양한 색이 존재한다고 본다. 내 안의 이런 모습, 이런 색들은 꼭 관객과 시청자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있을까?
 
어마무지해서 다 못 쓴다. 정말 어마어마하다.(웃음) 연극 무대에서는 지금 많이들 알고 계시는 그런 캐릭터가 아닌 역할도 많았다. 일단 많이 알려진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서 그런데, 아직 숨겨 놓은 내 비장의 카드를 기회가 되면 한 번 슬슬 꺼내볼까 싶다. 감독님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웃음)
 
▷ 정말 작품으로서도, 캐릭터로서도, 배우로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 만큼 '더 글로리'가 남다를 것 같다. 앞으로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 같나?
 
'더 글로리'를 보신 분들께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보신 분들에게 '저 배우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고 만든 시간이었다면 그게 나한테는 최고의 선물일 것 같다. 나를 생각해주신 시간이니까, 그런 시간을 갖게 해준 '더 글로리'가 요즘 나에게는 정말 영광스러운 순간이다.
 
친구들이랑 우리는 '운도 참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운도, 인맥도, 아무것도 없으니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요즘 인터뷰를 하면서 내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라고 있다. '나는 되게 운이 좋은 사람인가 봐요' '인복이 있어요'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걸 보면서 친구들과 이야기했던 게 부끄러워지더라. 굉장한 운과 좋은 사람,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그걸 '더 글로리'를 통해 알고 있는 거 같다.(웃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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