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봄날의 광장, 분향소의 겨울은 계속된다

서울광장 전경. 장규석 기자

4월, 서울광장 앞은 봄이 가득하다. 광장은 공사 가림막을 걷고 다시 새파란 잔디를 드러냈고, 길가에는 봄꽃이 줄지어 폈다. 봄볕에 이끌린 상춘객들의 옷차림도 한결 가볍고 화사해졌다.

하지만 잔디 위로 봄볕이 내린 서울광장 한 쪽에는 여전히 겨울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바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있는 곳이다. 희생자들의 사진이 늘어선 분향소 앞을 지나노라면 봄볕과 봄꽃에 한껏 들뜬 마음은 괜히 미안해지고 숙연해진다.

서울광장 앞 이태원 참사 분향소. 장규석 기자

잠긴 문도 여전히 겨울이다. 분향소가 들어선 이후 서울시청 정문 앞은 차가운 바리케이트가 영문 모르는 민원인들을 가로막는다. 지하철과 연결된 지하 1층에서 시청 로비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는 가동을 멈췄다. 오직 출입이 허락된 시청 후문에선 지키고 선 경찰과 경비원들이 사람을 쭈뼛하게 만든다. 그뿐인가. 후문으로 들어갈라치면 한 보수정당이 시청 이면도로에 내건 큼지막한 노란 현수막들이,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라며 오세훈 서울시장을 향한 원색적 비난 문구를 펄럭인다.

몇 년 만에 이제 겨우 마스크를 벗은 봄날, 시청광장에서 들떴던 마음은 분향소 앞에서 미안해지고 숙연해지고, 빙빙 돌아가야 하는 시청 출입문에 짜증스러워지고, 상스러운 현수막에 이르러선, '언제까지 이 꼴을 봐야하나' 화가 올라오고야 만다.

후문에서 바라본 현수막. 장규석 기자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 그로부터 159일이 되는 4월 5일까지 합동분향소를 운영하자는 서울시의 제안은 무안한 거절로 귀결됐다. 서울시 대변인은 지난 3일 정례브리핑에서 "계속 대화는 하고 있다"면서도 "유가족 측 입장변화는 없는 것으로 확인하고 있다…거부 의사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5일 합동분향소 운영이 끝나면 분향소를 일단 건물 안으로 들이자는 제안이었기에, 앞서 녹사평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가자는 제안을 한차례 거절한 유족들은,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밖으로 나갔다. 안으로 들어가면 진상도 모른채 잊혀질지 모른다는 절박감에 전국을 도는 진실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울시는 자진 철거를 강력히 요청하겠다고 했지만, 유가족들은 이날 참사 159일째를 맞아 추모대회를 열기로 했다. 유족 측이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이상, 또 서울시가 분향소를 '불법 시설물'로 규정한 이상, 엇갈린 입장은 최종 선택지, '강제 철거'를 향해 달려갈 뿐이다. 서울시의 한 고위관계자는 "더 이상 제안할 것이 없다"고 말했고 행정대집행을 향한 시계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울광장 앞 분향소는 다시 지난 2월, 겨울 풍경으로 돌아가고 있다.

가로막힌 시청 정문. 장규석 기자

한 서울시 고위 간부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서울 모처에서 발생한 화재 상황을 알리는 문자였다. 서울에서 발생한 거의 모든 재난은 시 간부들에게 실시간 공유되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 이후 고위 간부라면 누구도 서울시에서 발생한 재난을 몰랐다고, 또 뒤늦게 보고받고 알았다고 발뺌할 수 없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일요일 오후 인왕산 산불 대응을 위해 기민하게 현장에 나타난 서울시장의 모습 또한 참사가 남긴 교훈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태원 참사를 교훈삼아 더 안전한 사회를 향해가고 있다. 참사 이후 쏟아진 대책으로 뒤늦게나마 더 단단한 안전을 보장 받는 동안, 우리는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정당한 애도와 조의를 지불했는가. 무엇이 문제였는지 진상은 속시원히 밝혀졌는가. 재발방지 대책은 확실히 마련됐는가. 다시금 뒤돌아보게 된다.

서울시가 분향소를 철거하려는 이유는 '서울광장 사용 조례'에 규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다.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법과 원칙을 내세우기에 앞서 조례 위반 상황을 해소하고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돕는 유연성을 발휘할 방안은 없을까. 봄날의 광장에 강제 철거라는 살풍경이 펼쳐지지 않도록.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