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르네상스'에 이어 '그레이트 한강'까지. 15년 전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금의 오세훈 서울시장도, 대형 프로젝트는 한강과 연결돼 있다. '그레이트 한강 구상'을 발표한 직후 지난 12일부터 22일까지 오 시장의 9박 11일 유럽출장 동행을 시작하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물음은 '왜 저렇게 한강에 집착하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출장 도중 오 시장과 대화할 기회가 돌아오자 직접 물어봤다. "왜 그렇게 한강에 빠져 있는 겁니까?"
왜 그렇게 한강에 빠져 있는 겁니까?
대뜸 돌아온 대답은 "서울시민이 불쌍해서요"였다. 그리고 돌아온 질문, "내가 가장 흥분되고 기분이 좋을 때가 언제인 줄 압니까?" 기자가 어깨를 으쓱하자 오 시장은 "믿기지 않겠지만…"이라고 운을 떼며 답했다.
"시민들이, 젊은 청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부들이 내가 재임 중 만든 시설에서 즐겁게 여가를 보내고 있는 것을 볼 때에요. 정말 희열이 올라와요. 그 기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한강이라는 좋은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시민들은 이를 제대로 즐길 수 없고, 차를 타고 한두 시간을 나가서야 여가를 보낼 수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지난 19일 덴마크 코펜하겐 브뤼게 섬에 설치된 부유식 수영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오 시장은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사실 서울 시민들이 즐기실 수 있는 시설이 많이 부족합니다. 꼭 차를 타고 두세 시간 강원도나 경기도로 나가면 좋겠지만, 주말에는 차가 밀리기 일쑤거든요. 그런 서울시민들께 도시 바깥으로 벗어나지 않고도 충분히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런 시설을 서울 시내에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결국 가장 활용될 수 있는 시설은 한강변과 근처의 산책로입니다."
서울시민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을 서울 곳곳에 만들기 위해 한강의 활용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이고, 기왕에 이런 시설을 서울 구경을 온 관광객들이 들르는 명소로도 활용하자는 것이 오 시장의 구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대형 사업들을 진행하는데는 수년에서 십수년의 시일이 소요되고, 시장의 임기를 넘기는 경우도 많다. 오 시장은 자신이 과거 진행했던 사업들이 사퇴 직후 후임 시장에 의해 완전히 무효화되는 것을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한강개발 프로젝트를 발표할 때마다 등장하는 '세빛둥둥섬'(지금은 세빛섬으로 바뀌었다)에 대해서도 직접 물었다. "과거 한강 르네상스 사업의 핵심이었던 세빛둥둥섬과 같은 사례가 이번에도 또 생기지는 않을까요? 혈세 낭비 논란도 있었고…"
세빛둥둥섬 트라우마?…"한강개발 전담기구 검토"
오 시장은 세빛섬에 맺힌 것이 많아 보였다.
"세빛섬 얘기가 나오면 좀 흥분을 합니다…제가 갑자기 퇴임하고 나서 후임시장이 문을 걸어 잠갔어요. 민간이 투자를 했으면 투자 자본을 회수할 수 있도록 서울시가 도와줄 의무가 있는데 시장이 바뀌었다고 아무 이유 없이 문을 닫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죠… 횡령 배임 혐의는 전부 무혐의가 났구요. 민간투자 사업에 무슨 횡령과 배임입니까." (20일 출장 정리 기자간담회 발언)
민간투자 사업이라 수익으로 회수 가능한 SH공사의 지분 30%를 빼면, 서울시의 세금이 들어간 것은 없다는 설명이 잇따랐다. 결국 정치적인 이유로 세빛섬이 문을 닫게 되고 민간투자자가 큰 손해를 봤다는 입장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출장에서 오 시장은 퇴임 이후에도 한강 개발사업을 꾸준히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도 골몰했다. 힌트를 찾은 곳은 독일이었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시가 항만 재개발 사업을 전담하는 '하펜시티 주식회사'를 세워 30년 가까이 개발을 이어가는 것을 직접 본 뒤, 출장을 정리하는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시에도 "한강개발 전담기구 설립을 검토하겠다"고 공언했다.
"10개 정도의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몇 개는 흑자, 몇 개는 적자가 날 수 있는데, 개별 사업단위로 하다보면 이익이 너무 많으면 특혜, 적자가 나면 잘못된 정책이라는 비판 때문에 사업 동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요. 여러 사업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독립 조직이 있으면 이익 나는 사업에서 얻은 흑자를 적자 나는 사업에 투입할 수 있겠죠. 그러면 특혜시비도 사라지고…"
구체적으로 SH공사 내에 사업 본부를 만드는 방안과 하펜시티 주식회사처럼 별도법인으로 만드는 방법 2가지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말도 덧붙였다.
임기 중 완성하고 싶지만…
그레이트 한강 구상에 포함된 사업 상당수는 4-5년 안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결국 대선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고 질문했더니 "사실 이것도 성에 차지 않는 속도"라는 답이 돌아왔다.
"(더 빨리) 임기 중에 완성하고 싶은게 욕심인데 사업이 단위가 커지면 여러 과정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대선을 염두에 뒀다면 임기 중 완성을 목표로 했겠죠."
경제정의실천연합이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서는 "15년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예상했던 반응"이라면서 "한강 르네상스2는 더 친환경적으로 진행될 것이고, 경실련의 반대 성명은 실천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달라는 취지로 받아들이겠다"고 맞받아쳤다. 반대를 감수하고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오 시장은 9박 11일 일정 동안 개별 사업의 벤치마크 대상이 된 곳곳을 둘러보며 자신이 발표한 구상이 한강에 구현되면 어떤 모습이 될지 하나하나 가늠해보는 모습이었다. 런던에서는 강풍으로 템즈강을 건너는 케이블카(한강 곤돌라 프로젝트의 토대가 됐다) 운행이 정지되자 다음날 일정에서 틈을 내 기어이 케이블카를 탔다.
오 시장은 "현장마다 소회가 달랐다"면서도 '그레이트 한강' 구상 자체에는 더 확신을 갖게 된 것 같았다. "속도가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한 만큼 몇몇 사업에는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였다.
사업이 구체화되면 논란이 더 커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사업들이 구체화되면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오 시장이 제대로 된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까. 설득하고 타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그의 문제해결 방식이 앞으로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