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KTX 역세권 개발 2단계 사업이 대기업인 KCC의 '보상비 2500억원 요구'를 이유로 환지(換地) 방식으로 변경됐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울산 시장을 지낸 지난 2015년의 일이다. 하지만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문제의 보상비 규모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진행된 1단계 사업에선 농지와 임야를 가진 개인 지주들에게 평당(3.3㎡) 50만~70만원의 현금 보상이 이뤄진 반면 KCC는 공장부지를 주상복합 용지로 돌려받았다. 해당 주상복합 용지를 같은 구역내에서 매각된 토지를 바탕으로 가격을 환산하면 1755억원에 달한다. 이를 평당가격으로 계산하면 864만원이나 된다.
특정 대기업에게 10배가 훌쩍 넘는 보상이 이뤄진 셈이어서 특혜 의혹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KCC 2500억원 요구했다는데…"자료는 없다"
울산도시공사와 KCC는 지난 2015년 7월 울산KTX 역세권 2단계 사업을 위한 기본협약을 맺었다. 수용 방식을 적용했던 1단계와 달리 2단계 사업은 환지 방식으로 진행한다는 내용이 협약의 골자다.
환지방식으로의 변경은 김기현 대표가 울산시장에 취임하면서 빠르게 진행됐다. 김 대표는 2014년 9월 나온 2단계 사업 타당성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해 7월 KCC와 기본협약을, 12월에는 사업시행협약을 맺었다.
당시 울산시와 울산도시공사는 KCC에서 보상비로 최대 2500억원을 부르면서 수용방식이 불가능했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다.
울산도시공사가 작성한 'KTX 울산역 2단계 개발사업 추진상황'을 보면 "우리공사는 2016년 상반기까지 역세권 1단계 분양 저조와 KCC 언양공장 이전 보상비의 과다한 요구로 KCC 언양공장 부지에 대한 2단계 사업은 공동시행인 환지 방식으로 추진입장 표명"이라고 적혀있다. 금액은 괄호안에 2500억원이라고 표기했다.
해당 문건에는 2010년 5월 KCC에서 설비이전 비용자료를 제출했다며 역시 2500억원으로 금액을 특정했다. 당시 지역 언론에는 KCC가 25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낮췄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김기현 대표는 2015년 3월 울산시의회 임시 본회의에서 "역세권 개발을 위해 사업시행자인 울산도시공사는 사업초기에 KCC 언양공장의 기계설비 등 자산, 영업손실 등에 대한 보상비 과다로 사업성이 크게 부족해 KCC측에 공동개발을 제안한 바 있었다"며 "울산도시공사는 투자비의 최소화와 투자비용의 조기 회수를 통한 재무적 부담을 크게 완화하기 위해 KCC 언양공장의 토지에 대한 환지와 공장설비 등 보상비를 체비지 형태로 지급하는 환지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적정한 것으로 검토돼, 현재 KCC측과 협의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의 말 역시 KCC 공장 이전에 따른 보상비 때문에 환지방식으로 변경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KCC가 제출했다는 이전비용 문건은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울산도시공사 관계자는 "공장의 새로 짓는 수준의 보장을 요구해 받아들일 수 없었다"면서도 "해당 문건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도시공사의 박모 팀장 역시 "2000억원~2500억원을 요구한 자료를 보기는 봤지만 지금 자료는 없다"고 밝혔다.
KCC 측 역시 "울산도시공사에서 KCC측에서 해당 금액을 요구했다고 해서 쭉 찾아봤는데 우리가 공식적으로 그렇게 요구한 근거가 없다"면서 "이메일, 공문을 다 찾아봤는데 그런 내용이 없다"고 했다. 도시개발 개발 사업 방식을 결정지은 핵심 자료를 양측 모두 보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10배 부풀려진 숫자…개발방식 변경 위한 짬짜미?
개발 방식을 바꾼 근거가 되는 자료가 없다는 점도 수상하지만, 이전 비용 보상비가 과다해서 환지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것도 논리적 모순이다.
수용 방식이건 환지 방식이건 공장을 이전해야 하는 상황은 똑같은데, 이전 비용 보상이 많다는 점을 환지 방식 전환의 이유로 삼았기 때문이다.
2014년 타당성 조사 용역 보고서에는 KCC 자료를 바탕으로 한 영업시설 보상(이전비 보상)은 217억원으로 나온다. 당연히 이전비용은 수용방식이나 환지방식이나 차이가 없다. KCC에서 요구했다는 2500억원의 10%도 안되는 수치다. 이 보고서에 나오는 지장물보상(136억원), 영업손실보상(61억원)도 두 방식에서 금액이 똑같다. 세가지 보상금을 모두 합쳐도 414억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2500억원이 환지방식으로 바꾸기 위해 만들어낸 '가공의 숫자'일 수 있다는 의심을 낳고 있다.
용역 보고서를 통해 울산도시공사가 환지방식을 선택한 것은 이전비용 때문이 아니라 당장 토지 보상비가 들지 않아 사업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환지 방식의 원인이 달라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얽힌 대장동 사업을 추적해 온 김경률 회계사는 "사업성을 따지려면 토지 보상비가 당장 들지 않더라도 향후 공사가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환지로 줘야할 토지)도 감안해야 한다"면서 "이런 식이면 모든 부동산 개발 사업을 환지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KCC 언양공장 부지를 포함한 전체 사업 부지를 국토부 장관이 사업인정 고시를 했기 때문에 울산도시공사는 처음부터 KCC 언양공장을 수용을 할 수 있었다. 사업인정은 공공사업으로 판단하고 토지를 수용할수 있도록 하는 행정처분이다.
도시공사는 울산 KTX역세권 사업을 도시개발(공영개발)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1단계 사업은 2000억원의 보상비를 들여 수용했다. 환지방식에 비해 300억~400억원 정도만 추가하면 사업 전체가 수용방식으로 가능했다.
공장 부지를 강제 수용한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와 송파구는 풍납토성 복원·정비사업을 위해 삼표산업의 공장부지를 지난 2016년 강제수용했고, 대법원은 강제수용이 적법하다고 확정판결했다.
더군다나 2009년 11월 KCC가 김천시와 3000억원의 투자약정(MOU)를 맺으면서 언양공장이 이전할 것이란 전망이 일찌감치 나온터라 공장 이전이나 그 비용이 역세권 개발에 큰 쟁점이 될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KCC는 2014년 2월 언양공장 이전을 확정짓고, 2016년 2월 김천공장으로 이전을 마무리했다. 앞서 2012년에는 KCC언양공장이 30년 넘게 하천부지를 일부 무단으로 사용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돼 공장 이전에 대한 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있다.
책임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기억 안난다"
울산KTX 역세권 2단계 사업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KCC와 협약을 체결하며 서명한 최광해 전 울산도시공사 사장은 "10년된 내용인데 기억도 안나고 모른다"면서 "그런 것은 도시공사 쪽에 물어 보라"고 했다.
처음 2008년 울산KTX 역세권 분리 개발을 시작한 박맹우 전 시장은 "내가 있을 때는 개발 초기라 큰 그림을 그릴때인데 구체적인 추진까지는 하지 못하고 나왔다"면서 "지금 오래돼서 잘 기억이 안난다"고 했다.
2단계 환지방식을 확정한 김기현 대표는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