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 이후 기대했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측의 사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시민단체와 시민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6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간 '셔틀 외교' 복원, 한일 안보대화와 차관급 전략대화의 조기 재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완전 정상화 등에 합의했다.
기시다 총리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관해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에 발표한 한일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한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속 이어가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가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뜻하는 것으로, '식민 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가 명기돼 있다.
그렇지만 강제징용 피해자 등에 대한 일본 측의 직접적인 사과는 발표 전문 어디에도 없었다.
윤 대통령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 구상권 행사는 상정하고 있지 않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다른 내용의 판결이 선고됐"다면서 "이를 방치할 것이 아니라 협정을 해석해 온 일관된 태도와 판결을 조화롭게 해석해서 제3자 변제안을 해법으로 발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로 인한 구상권이 행사된다면 이것은 모든 문제를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이를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의 돈으로 피해자들에게 먼저 보상을 하는 '제3자 변제' 방안을 다시 한 번 강조한 셈이다.
이같은 발표를 지켜본 시민단체들은 일본 측의 직접 사과를 받아내지 못한 이번 정상회담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정은주 사무국장은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 앞에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전면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 가장 심각하다"면서 "특히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계속 요구했던 일본 기업의 사죄와 배상이 담기지 않은 해법을 기시다 총리 앞에서 약속해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에 윤 대통령이 (일본) 자위대 사열을 받고 일본의 재무장을 용인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며 "이번 행보로 한일 군사협력이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지 않을까 싶다"고 우려했다.
서울청년겨레하나 전지예 대표는 "일본이 사죄를 할 생각이 아예 없었다고 봐도 무방한 회담이었다"고 평가하며 "그래서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대답을 했다"고 비판했다.
양국 경제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과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의 '미래기금' 창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전 대표는 "그 기금의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정확히 일본 정부가 가해자이고 피해자는 엄연히 존재하는 문제"라며 "(일본은) 사죄하고 배상을 정확히 요구하면 될 일인데 기금까지 만들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그것도 피해국이 스스로 이렇게 하는 것이 비상식적이고 국민으로서는 치욕적이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논의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점도 지적됐다.
환경운동연합은 양국 정상 발표 이후 곧바로 논평을 통해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주요 피해국이 될 수밖에 없는 한국 정상이 침묵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무책임"이라며 "일본의 국제적 핵테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침묵하면서 국내에서는 '기승전핵'만 외치는 윤석열 대통령 역시 공범"이라고 일갈했다.
시민들도 한일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차가운 반응이었다.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홍모(31)씨는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했다는 점을 짚으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으셨는데 경제적으로 훨씬 큰 배상을 받은 것도 아니다"며 "대통령도 국민으로서 어떻게 저런 책임 없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정말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양국 경제단체가 마련하는 '미래기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직장인 김모(33)씨는 "과연 우리나라 국민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정부의 우선순위를 좀 모르겠다"며 "다른 무엇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로구에서 만난 공무원 최모(29)씨는 "아직 경제적으로 무엇이 이득인지 눈에 보이는 것은 없는데, 위안부 문제 같은 역사적인 부분을 많이 양보한 것 같아서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