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적 결단' 징용 해법에 거센 역풍…韓日 오히려 꼬일 수도

'엄중한 정세' 이유로 일방적 양보…위안부 합의와 비교해도 굴욕적
피해자 측 강력 반발, 법적투쟁 예고…차기 정부서 뒤집힐 수도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해법 발표를 마친 뒤 승강기에 오르고 있다. 황진환 기자

정부가 6일 밝힌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법은 우리 측의 일방적 양보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거센 역풍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위변제라는 정부 안은 이미 예상된 것이었지만 반대 여론이 줄곧 우세했기에 최종 결정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예상을 깨고 피해자 설득과 여론의 공감 없이 전격적으로 해법을 발표했다. '엄중한 국제 정세' 속에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력과 국위에 걸맞은 우리 주도의 대승적인 결단"이라고 말했다.
 

'엄중한 정세' 이유로 일방적 양보…위안부 합의와 비교해도 굴욕적

 하지만 대표적 굴욕외교 사례인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비교해도 이번 결정은 문제가 심각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위안부 합의는 '불가역적' 등의 표현으로 엄청난 국내 반발에 부딪혔지만 '10억엔 거출' 같은 일본 측 상응 조치가 미흡하나마 제시됐다.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겠다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한 6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용산역 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노동자상을 바라보고 있다. 황진환 기자

반면 이번 강제징용 해법은 일본 측의 배상(변제) 책임이 아예 면제됐음은 물론 사과조차 애매한 방식으로 이뤄지게 됐다.
 
일본 정부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1998년) 등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여기에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 등은 포함돼있지 않다는 해석이 중론이다.
 
일본은 강제징용 문제 등을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통해 이미 해결된 사안이란 입장에서 조금도 물러선 적이 없다. 과거 역대 담화를 계승한다는 것도 이른바 '65년 체제'(한일 청구권협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부의 이번 결정은 우리 측 일방적 양보라는 점에서 협상의 균형이 크게 깨진데다 위안부 합의의 가장 큰 교훈이랄 수 있는 '피해자 중심주의'와도 배치된다.
 
외교부는 '피해자들과의 밀도 있는 소통' 결과 "상당수 유가족들은 소송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과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조속한 해결을 희망"한다고 전했지만 피해자 측 설명은 다르다.
 
피해자 대리인단에 따르면 정부 안에 동의하는 유가족은 절반 이하다. 또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 기준으로 보면 전체 15명(연락처 불명 2명 포함) 가운데 생존자 3명은 모두 정부 안에 명시적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계획대로 피해자 측에 대한 판결금 지급 등의 절차에 나설 경우 피해자‧유가족 간 내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해자 일본 기업과 정부는 빠지고 엉뚱한 내부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피해자 측 강력 반발, 법적투쟁 예고…차기 정부서 뒤집힐 수도


갑자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나서 일본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과 함께 '미래청년기금'(가칭)을 만들겠다고 한 것도 이번 사안의 본질과 논점을 흐리는 부분이다.
 
피해자 측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외교적 실패를 감추기 위한 성동격서 같은 것"이라며 "전형적인 물타기"라고 비판했다.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이 더욱 심각한 이유는 '65년 체제'의 모순을 해소할 기회를 영영 놓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일 정부는 1965년 청구권협정에서 1910년 대한제국 식민지 병합의 합법성 여부를 모호하게 처리함으로써 이후 강제징용을 비롯한 과거사 갈등의 진원이 됐다.
 
다만 이는 우리에게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 책임을 추궁하는 도덕적 우의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에 이어 강제징용 문제까지 이대로 종결될 경우, 일본은 오매불망 과거사 굴레를 벗고 군사대국화를 향해 활개 칠 공산이 크다.
 
물론 정부의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최종 해결됐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해법을 공식 발표한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단 및 지원단체 관계자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민족문제연구소 김영환 대외협력실장, 강제동원 소송 법률대리인 임재성 변호사, 김세은 변호사. 황진환 기자

당장 피해자 측은 정부 안에 동의하지 않는 원고(피해자)가 단 1명이라도 있는 한 일본 피고 기업에 대한 사법 절차(현금화)는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정부가 '공탁' 등의 방식으로 원고의 채권을 일방적으로 소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만약 정부가 강행할 경우 법적 투쟁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법적 공방이 아니더라도 여론의 향배에 따라 차기 정부에서 이번 '3.6 강제징용 해법' 자체가 뒤바뀔 개연성도 충분하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말 그대로 일방적 조치일 뿐 국가 간 합의가 아니다. 외교적 부담이 전혀 없진 않겠지만 '해법'을 결코 수정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이 경우 한일관계는 회복불능의 신뢰 상실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조성렬 전 오사카 총영사는 "이번 정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판결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최종 해법이 될 수는 없고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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