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집회와 전광훈집회…3·1절 도심의 '두 얼굴'

이용수 할머니 정기수요집회서 "尹 대통령 위안부 문제 해결 약속 지켜달라"
시민사회단체 "강제징용 굴욕적 한일합의 중단해야"..양금덕 할머니 "사죄해야"
전광훈 자유통일당, '삼일절 천만국민대회' 성조기·태극기 들고 수 만명 모여

3·1운동 104주년인 1일, 서울 곳곳에서 대규모 집회가 이어졌다. 이날 집회에서 진보단체들은 현 정부의 한일 합의 추진 등을 비판하고, 보수단체들은 야당을 규탄하는 등 3.1절(삼일절)에도 광장은 어김없이 갈라졌다.

이날 정오부터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해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제1585차 정기수요시위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용수(95) 할머니가 참석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약속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정기수요집회에 인권운동가 이용수 할머니가 참석해 발언했다. 임민정 기자.

이 할머니는 "14살부터 지금까지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이용수는 여러분들이 있기에 봐주기 때문에 건강하게 여러분 앞에 얘기할 수 있어 고맙게 생각한다"며 발언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시절 안중근 의사, 김구 선생님 이어서 저를 3번째로 찾아주셨고 (후보시절) 대통령이 안 되어도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해서 너무 감동했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윤 대통령의 약속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믿는다"며 "UN 고문방지위원회에 위안부 문제를 보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며 "32년 동안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는 일본이 너무나 악랄하다"고 했다.

이 할머니의 수요 시위 현장 참석은 2020년 5월 정의연 후원금 사용 문제가 불거진 후 약 3년 만이다.

정의기억연대 이나영 이사장은 "3.1항쟁 104주년, 선조들이 목숨 바쳐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 역사와 정신을 되새기며 여성·인권·평화의 길을 더 깊고 더 넓게 열어갈 것을 다짐한다"며 "여성인권과 성평등이 우리 모두의 상식이 될 그날까지 우리 모두 굳게 손 잡고 함께 걸어나가자"고 외쳤다.

이날 수요시위에는 3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할머니들에게 명예와 인권을', '공식사죄 법적책임'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경기도 과천에서 왔다는 김모(57)씨는 "직장인이다 보니 평일에 열리는 수요시위에 참석할 수 있는 날이 오늘 뿐이었다"며 "역사적 의미가 있는 날, 역사를 올바로 지켜내는 하나의 장이라고 생각해 참석하게 됐다"고 했다.

이날 수요시위 현장 남쪽에서는 극우단체들이 일장기와 성조기를 들고 모여 "정의연 해체, 소녀상 철거" 구호를 연신 외쳤다. 이들은 이용수 할머니가 발언을 시작하자 "위안부는 거짓"이라며 비난 발언의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김씨는 수요시위 맞은편에서 일장기를 흔드는 집회 참석자를 향해 "저들은 역사를 훼손하고 있다"며 "혐오를 먹고 사는 세력들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인천에서 정의연 수요집회에 찾아왔다는 김모(25)씨도 "수요시위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평화시위를 하는데 반대집회를 하는 쪽은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시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에 맞서 정의연 측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와 명예훼손 즉각 중단하라',' 의미 없는 망언, 의미 없는 소음은 집회가 아니다'란 현수막을 걸었다. 같은 시간 종로구 일본대사관 인근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는 반일행동 회원들도 소녀상 사수 집회를 이어갔다.

이에 앞서 오전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서울 용산역 강제징용 노동자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강제징용 배상 해법을 비판하고, 일본의 사죄와 한국 정부의 적절한 대응을 촉구했다.

양대노총은 "일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담은 2018년 대법원 판결로 역사 정의 실현의 큰 걸음을 내디뎠지만, 일본 정부는 국제법 위반을 주장하며 적반하장으로 무역 보복을 하고 피해자에게 2중, 3중의 고통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날 서울 용산역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를 기리는 합동 참배에 나섰다. 임민정 기자.

기자회견 이후 양대 노총은 2017년 함께 세운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상 앞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를 기리는 합동 참배에 나섰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등 시민단체들은 이날 오후 2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3 ·1절 범국민대회를 열고 지난 1월 정부가 공식화한 강제동원 한일 합의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한일합의 추진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등 시민단체들은 이날 오후 2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3 ·1절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임민정 기자.

주최 측 추산 1천 명이 모인 이 자리에는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직접 참여해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양 할머니는 "(일본이) 사죄하고 배상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굶어 죽어도 천 냥 만 냥을 줘도 안 받는다. 사죄 받고 옳고 그른 일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양 할머니의 발언이 끝나자 집회 참가자들은 "할머니, 건강하세요"라고 화답했다.

이후 집회 참가자들은 외교부 앞으로 이동해 "윤석열 정부는 굴욕외교 한일 합의 중단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후 일본대사관 앞까지 행진해 '욱일기'를 찢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한편 동화면세점 인근에서는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극우단체인 자유통일당이 '삼일절 천만국민대회'를 열었다. 이 집회에는 경찰 추산 약 4만 명이 모였다.

집회 참석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손에 들고 흔들며 "대한독립만세, "주사파 척결", "이재명 구속"을 외쳤다. 대회 이후 참석자들은 삼각지역까지 행진했다.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극우단체인 자유통일당도 집회를 열었다. 임민정 기자.

한편, 서울시는 이날 종로구 보신각에서 3·1절 기념 타종행사를 열었다. 2019년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시민 대면 행사로 재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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